[에큐메닉스] 한국의료선교와 에큐메니즘 - 세브란스 설립과 초기 성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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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의료선교와 에큐메니즘
- 세브란스 설립과 초기 성장을 중심으로
1. 서론
‘연대(連帶)’란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것으로 여럿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기본으로 한다. 다시 말해 연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하나임을 인식하게 해줄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대의 동기는 기본적으로 ‘결핍(缺乏)’에 있다. 혼자서는 무엇인가 부족하고, 나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그 무엇이 나 이외의 사람에게 있을 때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대로서의 에큐메니즘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을” 것임을 순진하게 믿지 못하는 믿음 약한 자들이 벌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벨탑 쌓기 운동일지도 모르겠다.
제중원이 한국의 연합선교공동체였다는 사실과 제중원이 세브란스의 전신임은 이미 익히 알려진 것으로 서울대 동문회를 제외하고는 이론이 없다. 서정민, 『제중원과 초기 한국기독교』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3) 참조.
너무 유명하고 이론의 여지도 사실상 없으니 넘어가고 세브란스 이야기를 해보자.
2. 설립부터 사립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승격까지의 대표적 교파 연대 사례
1893년 11월 1일부터 제중원의 책임자로 근무하기 시작한 에비슨은 제중원을 단순한 병원이나 의학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의료인력 양성기관 및 연구기관으로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제대로 된 현대식 병원과 의학교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1899년 휴양을 겸한 안식년으로 캐나다로 귀국하여 그 방안을 모색하였다. 1900년 뉴욕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Ecumenical Conference of Missions)에서 그는 ‘의료선교 업무의 협조’(Comity in Medical Missions)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그는 여기서 각 교파의 선교사들이 협력하여 하나의 병원을 만든다면 훨씬 훌륭한 병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각 선교부들의 연합병원 건설을 주장했다. “7명의 의사가 7개의 병원에서 따로 일하고 있다. 아무도 건물이나 기구 등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 현재 서울에 있는 각 교파에서 파견된 7명의 선교의사가 협동하여 한 병원에서 일할 수 있다면, 적은 7개의 병원에서 하는 일의 몇 갑절을 더 할 수 있으며 그 중 몇 사람은 다른 지방에 가서 의료 전도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형우, 『세브란스와 한국의료의 여명』(서울: 청년의사, 2006), 100에서 재인용.
그리고 이러한 구상은 세브란스의 자금지원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
평양 스테이션의 선교사들의 강력한 반대와 조선정부의 비협조 “… 또한 새로운 병원 설립에 대한 한국 정부의 비협조와 몰이해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 정부가 병원부지 제공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과 건축 초기 과정에서 공사 승인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병원 신축을 위한 가장 큰 장애는 선교사들 내부의 반대였다. 특히 평양 선교지부 선교사들의 반대가 극심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새 병원의 신축이 한국교회에 투입되어야 할 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킴으로 한국의 복음화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에비슨이 1900년 10월 2일 한국에 왔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반대는 거의 즉각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용민, “미국 북장로회 서울 선교지부와 평양 선교지부의 관계,”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2호 (2010. 3), 209-210.
로 난관을 만나기도 하였으나 1904년 9월 봉헌식을 함으로써 입원실 규모 40병상의 조선 최초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기념병원’이 문을 열게 되었다. 새 병원은 에비슨의 바람대로 교파연합의 성격으로 운영되었다. 이는 1895년 콜레라 방역사업을 두고 교파와 지역을 막론하고 서로 협동하였던 경험이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연세의료원 120년사 편찬위원회, 『인술, 봉사 그리고 개척과 도전의 120년 - 1. 한국의 현대의학 도입과 세브란스(1885~1945)』(서울: 연세의료원, 2005), 113-114.
1905년 세브란스 병원은 북감리회 선교부의 합동위원회와 시험적으로 1년간 함께 일하기로 하고 합동사업에 대한 계획을 세울 위원을 선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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