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역사학과 문화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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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문화대혁명
1. 머리말
소위 “문화대혁명” 시기는 오늘의 중국사회를 鑄造해 낸 지난 반세기 남짓한 현대 중국의 역사 속에서 매우 특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60-70년대 중국사회와 중국인민에게 공전의 설렘과 쓰라림을 동시에 가져다 준 매우 특별한 경험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결정적인 喪失의 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세기 인류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젊고 활력이 넘치는 중국의 씨앗이 그 시련 속에서 움튼 특별한 시기로 볼 수는 없는가?
아직 문혁 시기의 역사가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에는 너무 이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기 중국인민이 겪은 시련과 경험이 현대 중국의 꿈과 희망을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분명하며,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나라 국민으로서, 또 오늘날 중국사회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발판으로서 문혁시기에 대한 보다 신뢰할 만한 정보와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이미 길게는 40여년 짧게는 30년 세월의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지금도, 문혁시기 역사학의 궤적을 더듬는 것은 아직도 필자와 같은 외국연구자에게는 몹시 어려운 작업인 것 같다. 당시의 자료가 아직 충분히 공개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공개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연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또 중국의 경우 극소수 훌륭한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설적인 연구로는 周朝民·莊輝明·李向平 編著, 『中國史學四十年』(廣西人民出版社, 1989)이 비교적 내용이 알차고, 專題硏究로는 蔣大椿『歷史主義階級觀點硏究』(成都: 巴蜀書社, 1992); 王學典, 『二十世紀後半期中國史學主潮』(濟南: 山東大學出版社, 1996); 同『20世紀中國史學評論』(山東人民出版社, 2002) 등이 있다.
중국 안의 연구자들에게도 이러한 어려움은 공유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 학계의 경우 문혁시기에 역사학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출발 단계에 있다고 하여 크게 실망할 일 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를 연구하기 위한 의향도 준비도 부족하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타계하신 閔斗基 先生이 남긴 서너 편의 학술동향 소개 수준의 글과 윤휘탁 박사의 문혁시기 影射史學에 대한 초보적 연구가 이 시기 연구의 현황이다. 李奭, 「現代中國의 歷史學(1949-1999): 社會主義 歷史學의 摸索과 挫折, 그리고 새로운 地平」, 『동아시아 역사연구』제6집(1999, 12): pp.53-54. 지금 까지 연구로는 閔斗基, 「中共에 있어서의 孔子批判과 秦始皇의 再評價: 石崙의 尊法反儒論을 中心으로」(1974.1.24 『서울평론』11호); 동,「中共에 있어서의 水滸傳批判의 虛와 實」(1975.10.2 『서울평론』98호) 윤휘탁,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역사인식과 影射史學」(『한국사시민강좌』제21집: pp.207-227) 가 있다.
또 필자의 이 글 역시 한국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는 역부족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위에 인용한 논문(1999) 외에도 중화인민공화국 시기 사학사에 대한 몇 편의 글을 발표했으나 문화대혁명시기의 사학사에 대하여는, 자료의 한계 등으로 충분한 검토를 못했다. 이 연구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작업이며, 전작과 함게 참고하기 바란다. 「현대중국 역사학연구의 추이와 동북공정의 역사학 」『중국의 동북공정과 중화주의』연구총서 12 (고구려연구재단, 2005): pp. 19-80 ;「社會主義 現代化改革 初期의 中國 歷史學의 推移」(『慶北史學』13,1990: pp.55-98)
따라서 이 논문에서 이용하는 문혁기간 출간자료는 대부분 필자가 北京의 판쟈웬에서 우연히 맞닥뜨려 사 모은 것들이고, 체계적으로 수집한 자료에 의거한 내 나름의 본격적인 연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최근 국외(홍콩중문대학)에서 문혁관계자료를 정리한 시디롬이 나왔다는 정보가 있지만, 연구를 충족시킬 만한 충분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지, 국내에 들여온 곳이 있는지 불확실하다.
따라서 필자의 논의 역시 중국학자들의 연구 성과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자료의 부족을 핑계 삼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음은 가까운 과거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밖에 없는 뼈아픈 역설이다.
또 우리는 통상 정치사의 시각에서, 1966년 5월 모택동의 “5·16통지”에 의해 문화혁명이 새롭게 발동하고 나서부터 1976년 10월 4인방이 체포될 때까지 약 10년 5개월의 세월을 “문화대혁명”시기라고 매우 극적인 용어로 부른다. 그러나 사학사의 관점에서 시기구분을 한다면, 1965년 11월 10일 上海의 『文報』에 「評新編歷史劇《海瑞罷官》」이 실리고, 이어『紅旗』잡지의 歷史組 戚本禹가 쓴 「爲革命而硏究歷史」(1965년 13期)가 발표된 다음부터 1976년 말 四人幇이 무대에서 내려갈 무렵 까지 약 11년의 기간을 “문화대혁명 시기 역사학”으로 부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白壽, 『中國史學史論集』(北京: 中華書局, 1999) p.334 참조
그러나 문화대혁명 시기 역사학을 시기구분을 한다고 하여 문혁시기의 역사학을 그 이전 시기의 역사학과 완전히 절연한 새로운 역사연구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건국 이후 건설된 사회주의 혁명과정에서 발전한 역사학 중 맑스주의 역사주의적 역사학이 거세된 반면, 제1차 사학혁명 시기에 출현한 역사학의 관점이 계승되고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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