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작품세계의 이해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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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작품세계의 이해와 고찰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는 1863년 노르웨이 남부의 작은 마을 뢰텐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인 1864년 그의 가족은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로 이주했다.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 동안 그를 짓누르게 될 가혹한 운명과 마주해야 했다. 먼저 그가 5세 때 어머니를 결핵으로 떠나보냈다. 그로부터 9년 후에는 누나 역시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엄격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뭉크가 파리에서 살았던 188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남동생도 1895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뭉크 역시 병약하여 질병이 늘 따라다녔다.
뭉크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예술가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아버지의 반대로 1879년 오슬로에 있는 기술대학에 들어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잦은 병치레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1년 왕립 미술공예학교에 입학한 그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자연주의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의 문하에서 프랑스 인상주의를 배웠다. 그리고 한스 예거(Hans Jaeger)가 이끄는 극단적 자유주의자 그룹인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아’에 합류했다. 뭉크는 예거에게서 영감을 받아 어둡고 고뇌에 찬 자신의 삶과 심리적 경험, 그리고 사랑과 죽음에 대한 견해를 작품에 반영했다. 1886년 작 “병든 아이”는 누나의 죽음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어린 시절부터 줄곧 따라다닌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 정적, 슬픔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 대해 비평가들은 거칠고 암울한 묘사 방식에 대해 경악했지만, 뭉크는 이 그림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1892년 뭉크는 베를린 미술가협회의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에는 총 55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그때까지 그의 작품을 경험하지 못했던 베를린 미술계는 곧바로 파문이 일어났다. 보수적인 언론에서는 성과 죽음, 그리고 폭력의 이미지를 담은 그의 그림을 보고 강하게 비방하고 나섰다. 결국 전시회는 1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뭉크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베를린 미술가협회의 분열을 유발하여 이후 베를린 분리파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뭉크는 1893년부터 <생의 프리즈>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생의 프리즈>는 삶과 사랑과 죽음에 관한 시다. 뭉크는 이 연작을 통해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보려 했으며, 인간 감정의 모든 국면을 형상화시키고자 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 《절규》이다. 《절규》는 뭉크가 ‘생의 공포’라고 부르던 것을 표현했다. 온통 핏빛으로 물든 하늘과 이와 대조를 이루는 검푸른 해안선, 동요하는 감정을 따라 굽이치는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의 병치, 그리고 극도의 불안감으로 온몸을 떨며 절규하는 한 남자, 이 남자의 절규는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과 고통에 대한 울부짖음이고, 뭉크는 이를 입 밖으로 표출시켰다. 뭉크는 이 이미지를 다양한 매체로 50점 가량 제작했다. 평소 조울증과 알코올 중독을 겪었던 뭉크는 1908년에 신경쇠약에 걸려 덴마크 코펜하겐의 병원에 8개월간 입원했다. 이후 건강이 회복되면서 색채가 밝아지고 작품 양식이 변화되면서 이전의 표현주의적 힘은 다소 경감되었다. 뭉크는 1909년 3월 오슬로에서 열린 뭉크 회고전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자신의 고국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뭉크는 주요 거처를 노르웨이로 정하고, 1910년부터 1916년까지는 오슬로 대학 강당의 벽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1916년 오슬로 근교 에켈리에 넓은 면적의 토지를 매입했고, 그곳에 은거한 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뭉크는 1933년 70세 생일에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성 올라브 대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1937년 독일의 나치 정부는 뭉크의 그림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독일 미술관에 있는 그의 작품 82점을 압수했다. 말년에 그는 시력을 거의 다 잃었으며, 1944년 1월 23일 오슬로 근처의 에켈리의 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그의 80번째 생일이 지나고 몇 달 뒤였다. 뭉크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그의 작품은 1963년 뭉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뭉크 미술관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주요 작품에는 《병든 아이 The Sick Child》(1886), 《절규 The Scream》(1893), 《흡혈귀 Vampire》(1893~1894), 《잿더미 Ashes》(1894), 《사춘기 Puberty》(1894~1895), 《질투 Jealousy》(1894~1895), 《마돈나 Madonna》(1894~1895), 《담배를 피우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Burning Cigarette》(1895), 《병실의 죽음 Death in the Sickroom》(c. 1895), 《생명의 춤 The Dance of Life》(1899~1900), 《마라의 죽음 I Death of Marat I》(1907), 《시계와 침대 사이 Between the Clock and the Bed》(1940~1942) 등이 있다. <두산 백과사전>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감정에는 크게 공포와 불안이 있다. 그러나 과연 공포와 불안의 차이를 물었을 때 여러분은 제대로 답할 수 있는가? 이는 두 감정의 대상에 대한 차이로 알 수 있다. 공포는 무엇인가에 대한 공포 대상이 있는 두려움인 것이다. 그러나 불안에는 대상이 뚜렷하지 않거나, 그 대상 자체가 없다. 대상이 없기에 불안은 예측할 수 없다. 즉 불안은 불현듯 우리의 몸으로 엄습해오고 감싸오는 동요(動搖)인 것이다. 공포를 비교적 저차원 적인 두려움이라고 한다면, 불안은 좀 더 고차원적인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패배할 것에 대한 불안, 손해에 대한 불안, 같은 예를 들며 위의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단기적인 불안이 아닌 삶의 근원적인 불안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이러한 근원적인 삶의 불안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의 불안은 인간의 존재의 가장 필연적이고 본래적인 가능성,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죽음의 가능성에 대해 직접 대면하지 않고 도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죽음을 하나의 재앙으로서만 인식되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애써 안심시키려 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죽음을 생명의 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며 은폐해나간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한 고찰이야말로 모든 외적인 조건으로부터 우리의 고유한 삶, 생명을 해방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우리 스스로에게 은폐되고 망각된 죽음이 삶 속으로 환기 될 수 있는가? 하이데거는 여기서 불안을 언급한다. 죽음은 불안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통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알린다. 어느 순간 불안은 생명을 엄습해오고, 불안 속에서 우리는 죽음과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생명에 대한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생명에 의거한 우리의 실존 방식을 뒤 바꿔 놓게 된다. 우리의 일상 세계는 모두 낯설게 느껴지며 죽음과 고통, 불안은 우리의 고유한 생명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쉽게 말한다면 우리 스스로만 짊어질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죽음에 우리가 철학적으로 접근해보고 성찰해본다면 우리는 외적 조건, 외부 상황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우리 스스로의 고유한 생명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뭉크의 작품들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근원적 불안, 고통을 잘 보여준다. 우선 뭉크의 대표적 작품 <절규>를 살펴보자
이 그림에서는 유령 같은 모습의 인간으로 표출되었다. 전율하며 양손을 얼굴에 대고 있는 이 인물은 화면의 아래쪽에 위치하여 정면으로 관객을 향하고 있다. 그의 해골 같은 얼굴에는 공포에 찬 절규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온다. 배경 화면의 구성을 대담하게 사선으로 처리하였으며, 얼굴선의 동적인 처리와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에 맞추어진 배색 등으로 형식적인 면에서 더욱 강렬한 효과를 나타낸다. 붉은 구름은 마치 불타고 있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화면 효과를 나타내며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뭉크는 보는 이들의 감성을 집요하게 자극하며 회화라는 양식을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표현한 화가이다. 그리고 작품을 통하여 인간의 내적인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왜곡, 율동하는 듯한 선 등의 표현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그림에서 인물은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의 모습 또는 유령 처럼 표현되고 있는데, 뭉크는 깊은 좌절에 빠진 사람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형태의 왜곡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그림에서 가장 큰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림 어디에도 그가 고통에 찬 절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거나, 암시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비명을 지르는 사람 뒤에 그려진 두 사람과 유유히 흘러가는 몇 척의 배는 고통에 가득 찬 그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뭉개지고 불확실 하게 표현 되어 있다.
이는 이유 없는 두려움의 감정, 즉 생명의 근원적 불안감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스스로에게 존재하는 죽음, 또 그것을 통한 본질적인 생명의 체험을 잘 보여준다. <절규> 캔버스 속 주인공의 몸은 흐릿하고, 뒤틀려 다소 비현실적으로도 보인다. 이는 우리의 현실적 삶은 초월해 죽음과 맞선 주인공이 고통과 불안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경험하는 것을 그려낸 것이라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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