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삼국유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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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요약
제1장 프롤로그
최남선, 415년 만에 『삼국유사』를 찍다
최남선은 열다섯 살에 황실 유학생에 뽑혀 1904년 10월에 일본은로 건너갔다. 그는 도쿄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석 달을 채우지 못하고 자퇴하였다. 그 후 다시 사비생으로 와세다대학 고등사법부 지리역사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한국인 유학생들과 모의국회가 사단을 낳자, 이에 자퇴하였다. 최남선은 열여덟 살의 나이에 신문관을 만들었다. 민중을 계몽 교도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자는 목적이었다. 신문관에서 1908년, 최초의 근대적인 잡지 『소년』이 탄생하고 거기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실렸다. 이후로 1927년 계명 구락부의 기관지 『계명』에 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실은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잡지에 실은 데 대해 이렇듯 강조하는 까닭은 1512년 경주에서 한 번 인쇄된 다음, 실로 415년 만에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최남선의 손을 통해 새 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나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거창한 표현으로 ‘민족의 고전’이라 떠받들어지는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이렇듯 긴 침묵과 외면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삼국유사』가 소중히 다뤄진 이유
‘호사문고 삼국유사 전승의 연구’-호사문고 300년 동안의 역대 장서 목록이 영인본으로 나와 있는 것 중에 『삼국유사』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궁중으로 간 32종 한 세트는 천황의 열람을 마치고 돌아와 이후 도쿠가와 막부가 망하는 날까지 나고야의 호사문고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천황이 본 책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목록의 편찬자들은 22종의 목록마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32종의 제목 밑에 반드시 ‘궁중에 빌려 드렸다가 돌려받은 책’이라는 메모를 빼놓지 않고 적어 넣었다. 에도 시대의 사료를 찾아 헤매던 도쿄제대 국사학과 교수 쓰보이 구메조도 이 때문에 쉬 눈길이 머물렀을 것이다. 『삼국유사』라는 낯선, 그러나 한국의 역사를 매우 특이하게 전해주는 이 책을 읽어 보고, 학계에 이를 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겠다.
일연의 편찬 의도
- 연오랑과 세오녀는 해와 달의 정령을 의인화한데서 의의가 큼-한 집단의 정신세계, 사회질서를 의미
- 해와 달이 제 빛을 내는 것이야 말로 세상이 바로 서 있는 증거
- 하늘의 해와 달이 다름 아닌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란 의미
-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갔다는 것은 신라 사회의 그런 정신적 질서가 상실되었음을 말함
3장. 뜨거운 감자 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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