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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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화가 이중섭
소년 이중섭은 풀밭에 엎드린 채 황소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서산 아래로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스케치북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황소는 되새김질을 하며 이중섭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이중섭은 오산 학교 재학 시절 , 틈만 나면 들판에 나가 풀을 뜯는 소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이런 이중섭을 마을 사람들은 소에 미친 녀석이라고 불렀다. 이중섭은 1916~1956년 동안 살았다.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안 남도 평원군 부농의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당시 오산 학교는 민족 의식이 강한 선생님이 많았다. 교장은 조만식 이었고, 함석헌 도 이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오산 학교 시절에 이중섭이 최선을 다해 공부한 것은 그림공부였다. 그가 열성적으로 그림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화가이자 미술 교사였던 임용련 덕분이었따. 임용련은 미국 예일 대학 미술학부를 1등으로 졸업한 유명 화가였다. 이중섭이 들판에 나가 황소 그림에 몰두하게 된 것도 임용련 으로부터 미술 지도를 받기 시작하면서였다. 이중섭은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데생 연습을 수없이 햇다. 어느 날 , 이중섭은 밀가루에 수채 물감을 범벅해서 그것을 짓이겨 바르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물감이 마르자 화면에선 밀가루 더뎅이가 독특한 입체감을 나타냈다. 이것을 본 임용련은, "그래, 중섭아. 바로 이거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거야.독창성을 길러야해 . 새로운 소재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일본은 끝내 조선에 대해 국어 말살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그래서 이중섭은 한글 자모를 조합해서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림을 그려서 우리 말과 글도 없어지지 않겟다고 생각하고
황소를 데생하기 위해 들판에 나가는 것도 미루고, 한글 자모를 이용해 독특하게 구성한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이중섭은 그 그림을 임용련 선생에게 보여주었다.하지만 선생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중섭이 오산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임용련이
"너는 일본으로 건너가야 한다. 네가 좋아하는 조선의 황소가 일본에는 없지만, 정말 힘 좋은 조선의 황소를 그리려면, 일본에 가서 그림 공부를 더 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도 일본을 알아야 한다."
이런 임용련 선생의 말씀에 용기를 얻은 이중섭은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제국 미술 학교에 입학했다. 그 당시 일본 화단은 서양의 전위 미술까지 들어와 있을 정도로 서양 그림을 모방 하는 분위기였다. 이중섭은 참된 예술은 태어나 자란 곳의 땅냄새가 흠뻑 배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동경 문화 학원으로 학적을 옮겼다. 이중섭의 나이 스무 살때 비로소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중섭에게도 사랑스러운 여성이 나타났다. 동경문화 학원의 2년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였다.
1938년 5월 , 이중섭은 일본인 미술가들이 창립한 단체인 자유 미술가 협회의 공모전에 응모하여 협회 장상을 받았으며, 1943년에는 망월이라는 작품을 출품해 특별상인 태양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에 있는 조국의 비운과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작품이다.이중섭이 귀국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사코와 결혼하여 원산에 정착했다.
새로 마련한 살림집의 마당이 넓어서 한쪽에 닭장을 짓고 닭을 키웠다. 닭은 곧 그에게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이중섭은 닭을 너무 가까이하다가 닭의 깃털 속에 살고 있던 닭니가 옮아 한동안 고생을 하기도 햇다.
1946년은 이중섭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해였다.
그의 형이 대지주로 규탄 받아 원산 내무서에 갇혀 있다가 죽었고,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첫아이가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 때 이 소식을 들은 한 친구가 달려왔다. 그 친구는 흠칫 놀랐다. 이중섭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림에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이중섭은 아들이 천당에 가서 꼬마들과 놀으라고 꼬마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여러 장이었따. 그 친구는 한 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것은 무엇인가 물었다
그것은 천도복숭아였다. 아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따먹으라고 그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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