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스님 이상 원사를 지켜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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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암 스님이 상원사를 지켜낸 이야기
○한암 스님은 누구?
한암선사(重遠禪師) (1876∼1951)
근대의 고승. 성은 온양 방(方)시. 호는 한암(漢巖). 강원도 화천출신. 아버지는 기순(箕淳)이며, 어머니는 선산 길(吉)시이다.
천성이 영특하고 총기가 빼어났으며, 한 번 의심이 나면 풀릴 때까지 캐묻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1897년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기암절벽의 하나하나가 부처의 얼굴이 아니면 보살상을 닮은 것으로 느끼고 깊이 감격하여 입산수도를 결심하였다.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의 행름선사(行 禪師)를 모시고 수도를 시작하였는데, 그때 진정한 나를 찾고, 부모의 은혜를 갚으며, 극락에 가겠다는 3가지 원(願)을 세웠다. 이어서 금강산 신계사(新溪寺)의 보운강회(普雲講會)에서 수업하다가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 도반인 함해(涵海)와 함께 전국의 고승을 찾아 구도(求道)의 길에 올랐다.
1899년 가을 김천 청암사(靑巖寺) 수도암(修道庵)에서 경허(鏡虛)를 만나 가르침을 청하였다. 경허가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일러 주는데 갑자기 안광(眼光)이 열리면서 오도(悟道)하였고, 9세 때부터 가졌던 반고씨 이전의 인물에 대한 회의가 풀렸다. 이어 대중들 앞에서 경허로부터 도를 깨달았음을 인정받았다. 그 뒤 오도 후의 수행인 보임(保任)의 공부를 하였으며,
1905년 봄에 양산 통도사의 내원선원(內院禪院)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910년 봄에 선승들을 해산시키고 평안도 맹산 우두암(牛頭庵)으로 들어가 보임공부를 계속하였다. 같은 해 겨울 부엌에서 불을 지피다가 홀연히 대오(大悟)하여 마음의 자재를 얻고 오도송을 남겼다. 그 뒤부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풍(禪風)을 떨쳐 교화하였다.
1925년 서울 봉은사(奉恩寺)의 조실로 있다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의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가서 27년 동안 동구 밖을 나오지 않았다. 한때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승려 사토(佐藤泰舞)는 우리 불교계를 돌아본 뒤 마지막으로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 그와 함께 선문답(禪問答)을 나눈 뒤 크게 감명을 받고, 어느 강연회에서 "한암스님은 일본 천제에서도 볼 수 없는 도인임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둘도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1941년 조계종이 출범되었을 때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어 4년동안 조계종을 이끌었다.
○한암 스님이 625때 상원사를 지켜낸 이야기
한암스님이 상원사를 지킨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6.25전쟁이 치열할 즈음 산속의 절이 적의 거점이 된다고 하여 소각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월정사를 불태우고 이어서 상원사를 불태우려 하였다. 야밤에 대원들을 이끌고 상원사로 와서 절을 불태울 것을 알리는 장교에게 그는 잠깐 기다리도록 이르고 가사와 장삼을 갈아입은 뒤 법당으로 들어가 좌정하고 불을 질러도 좋다고 하였다. 장교가 나올 것을 강요하자, "그렇다면 이 법당과 함께 불에 타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겠노라"고 하였다. 스님의 굳은 의지에 감화를 받은 군인들이 한 걸음 물러서기는 했지만 상부의 명령을 불복종 할 수 없어서 절의 문짝만 떼 내어 불살라서 절이 타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1·4후퇴 때에도 오대산의 모든 승려가 피난하였으나, 그는 남아 상원사를 지켰다. 이렇게 해서 상원사를 지켜낸 한암스님은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1년에 76세로 입적하셨다. 영산전(靈山殿)에서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방한암스님, 탄허스님, 그리고 방한암스님을 모셨던 의찬스님의 부도와 부도비가 나란히 서 있다.
사진설명)한암스님은 입적할 때 앉은 채 입적하셨다. 입은 벌어지고 머리는 뒤로 제쳐졌으나 분명히 앉아 있는 사진이다. 색공(色空)이 다 끊어졌을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은 경지이다. 후일의 한국불교를 위하여 수제자 탄허스님 통도사로 피난시키고 본인은 6·25사변을 미리 알면서도 피난치 않고 상원사에서 앉아서 운명하였다. 이 사진은 상원사에 소장되어 있다.
=>상원사 동종은 6.25전쟁 때 불에 타 녹아 없어질 번한 위기가 있었지만, 27년 동안 상원사 밖을 나가지 않고 수행정진 하던 한암(漢岩)스님의 굳은 의지에 힘입어 월정사에 있던 선원사 터 동종과 같은 불행을 면하게 되었다.
상원사로 종이 옮겨 오게 된 이야기
○청아한 소리 때문에 고향을 떠나온 상원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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