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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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20년대 민족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Ⅰ. 작가의 생애
수주 변영로는 1898년 5월 9일 서울에서 아버지 변정상과 어머니 진주 강씨 사이에서 3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변정상은 진남포 부윤을 거쳐 재령 군수를 지낸 청렴한 관리였고, 시와 글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의 형인 변영만과 변영태는 각각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다. 강직한 집안 분위기는 이후 변영로의 시세계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1907년 중앙 학교(중앙고보의 전신)에 입학했다가 졸업을 얼마 앞두고 자진 퇴학하고 13세 때 계산학교를 졸업한다. 15세 때인 1912년 이흥순과 빠른 결혼을 하고 1914년 영시(英詩) 《코스모스》를 발표하였다. 21세 때는 중앙고보의 영어 교사로 취임했다. 그의 영어 실력은 뛰어나서 통역, 번역을 잘했고, 1919년 3·1운동 때는 YMCA의 구석진 방에서 일경의 눈을 피해 가며 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하였고 서양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 1922년 이후 《개벽》지를 통해 해학이 넘치는 수필과 발자크의 작품 등을 번역해서 발표하였다. 1924년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을 노래한 시집 《조선의 마음》을 발간했고, 193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호세대학을 수료하고 귀국, 193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신가정》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신가정》 표지에 손기정 선수의 다리만을 게재하고 ‘조선의 건각’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등 일본 총독부의 비위를 건드려 그들의 압력으로 회사를 물러나기도 하였다. 그 무렵 「신가정」을 편집하고 있던 수주는 손기정 선수의 쾌거를 그냥 넘길 수 없다 생각하고는 잡지의 권두화보에손기정 선수가 양정학교의 운동복을 입고 달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하나 구해서는 상반신은 잘라버리고 두 다리만을 확대하여 ‘세계 제압의 다리’라는 제목을 붙여 잡지에 게재하였다. 잡지가 발간되자말자 곧 종로경찰서에서 형사 두 사람이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그 중 한 형사가 다짜고짜로 “당신은 참으로 지능범이오, 일장기를 지워버리는 것이 말썽이 되니까, 그것을 아예 잘라버리고 다리만 낸 것이 아니오? 답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오”하며 협박하였다. 그 말을 들은 수주는 태연한 어조로 “손기정 선수의 상반신을 잘라버리고 두 다리만 확대하여 실은 이유를 설명하겠소. 손선수가 세계를 제패하였다니 그가 무엇으로 세계를 제패하였겠소? 이것저것 이유를 다 들어 보아야 소용없는 것이고 결국은 그의 무쇠같은 두 다리가 세계를 제패한 것이 있는 그림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는 여기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오. 그리고 마침 잘라버린 사진 동강에는 당신들이 우려하는 일장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 돌아가시오”
1927년 ‘우리의 것’을 알아보기 위해 백두산에 올라가 《두만강 상류를 끼고 가며》《정계비》 《천지가에 누워》 등 10여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한용운의 ‘님’처럼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한 시 <봄비>로 서정시인으로서의 문단적 위치가 확고해서 1927년에 이화여전 교수가 되기도 한 그는 시에서 기교에 중점을 두고 어구의 선택과 연마에 재능을 보이는 한편 세련된 기법으로 민족의식을 시화해서 우리의 초창기 현대문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수필집 《명정40년》이 유명하고, 1981년 3월 그의 20주기를 맞아 새로 발견된 그의 작품까지를 수록하여 《수주 변영로 문선집》이 출간되었다. 1949년 제1회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61년 3월 14일 변영로는 서울의 자기 집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Ⅱ. 작품 경향과 변모 과정
1. 해방이전의 시
1) 1920년대 시 경향- 현실인식과 민족의식
수주 변영로는 동인지 문인들과 당대 시인들이 낭만적이고 주정주의적 시 경향에 빠져 있을 때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인이다.
조선 마음을 어디 가 찾을까?
조선 마음을 어디 가 찾을까?
굴속을 엿볼까, 바다 밑을 뒤져볼까?
빽빽한 버들가지 틈을 헤쳐 볼까?
참고문헌
※ 참고문헌
-한국명시해설, 송하선, 국학자료원
-한국근현대문학사, 윤병로, 명문당
-한국문학통사, 조동일, 지식산업사, 2005
-1920년대 초기시의 이념과 미학, 조영복, 소명출판, 2004
-1920년대 시의 ‘님’ 지향성 연구, 허수진,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1998
-수주 변영로시 연구, 송영목, 한국어문연구학회, 1998
- http://blog.naver.com/kwank99?Redirect=Log&logNo=30020839861
- http://blog.naver.com/w_wonho?Redirect=Log&logNo=6002776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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