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동 학살지 봉두 공원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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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호명동 학살지, 봉두 공원 묘지
1. 호명동 학살지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부역자나 적극 가담자를 야음을 틈타 인적이 없고 후미진 호명동 야산 일대에 끌고 가 며칠에 걸쳐 학살을 하였다. 사건 후에 이 일대를 지나는 사람은 시체 썪는 가 진동을 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짐작이 된다. 90년대 초 이 일대의 도로공사중에 많은 수의 유골이 발견되었고 1998년과 1999년 2회에 걸친 「여수지역사회연구소」의 ‘여순사건 암매장지 유골발굴’에서도 5구이상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한 구의 두개골에선 총으로 사살된 것을 증명하는 실탄구멍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가까운 둔덕동 용수부락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나간 트럭과 실려간 사람들을 보았을 때 호명동 야산에서만 100여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살 후의 암매장지 흔적
① 호명동 야산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부역자나 적극 가담자를 야음을 틈타 인적이 없고 후미진 호명동 야산 일대에 끌고 가 며칠에 걸쳐 학살을 하였다. 사건 후에 이 일대를 지나는 사람은 시체 썪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짐작이 된다.
90년대초 이 일대의 도로공사중에 많은 수의 유골이 발견되었고 1998년과 1999년 2회에 걸친 「여수지역사회연구소」의 ‘여순사건 암매장지 유골발굴’에서도 5구이상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한구의 두개골에선 총으로 사살된 것을 증명하는 실탄구멍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가까운 둔덕동 용수부락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나간 트럭과 실려간 사람들을 보았을 때 호명동 야산에서만 100여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② 봉계동 장개골과 큰골
호명동 야산과 함께 많은 수의 인명을 학살한 곳으로 한 골짜기에 많은 사람을 죽이고 암매장하기가 어려워 이곳 저곳 분산하여 학살하고 암매장 한 곳으로 보인다. 1999년 ‘여순사건 암매장지 유골발굴’에서 이 일대에서 3구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하였는데 사건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많은 시신들이 돌무덤에 덮여 가까이에서 보면 사체의 손이나 발이 삐져 나온 것을 많이 볼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골발굴에서 7~8기에 이르는 이들 돌 무덤들은 공기가 쉽게 드나들어 모두 풍화되어 버리고 아무런 유품도 발견되지 않아 발굴단 모두를 허탈감에 빠지게 하였다. 발견된 유골들의 상태도 이를 뒷받침하였는데 한 장소에서 발견된 유골은 정강이뼈 일부를 제외하곤 아무런 부분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한구의 유골은 두개골과 정강이뼈가 발견되었는데 두개골이 엎어져 있어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었다.
③ 민드래미 골짜기 북쪽과 남쪽
호명동이나 봉계동 골짜기처럼 분산하여 처형되고 암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드래미 남쪽 골짜기에서 많은 사람이 처형되어 증언자가 많은데 처형자들과 같이 집단으로 총살되었다가 급소를 맞지 않고 살아나서 인근 시전마을에서 숨어있다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었다.
④ 구봉산 골짜기
여수가 진압되고 부역자 색출작업이 한창이던 1948년 11월 초순에 남산동 국동 일대의 적극 가담자중 8명을 구봉산의 현 구봉초등학교 옆 골짜기에서 집단 학살한 후 암매장 한 곳이다. 이들 희생자들은 많은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끌려갔었는데 이들의 등에는 자신이 처형된 후 불태워질 장작을 짊어지게 하였다고 한다. 만성리와 같이 이들도 총살된 후 장작더미에 포개놓고 불태워졌다.
2. 봉두 공원
1998. 10. 12 여수KBS, MBC 여순사건50주년 다큐멘타리 제작팀과 함께 호명동 암매장지발굴을 시작하여 총탄구멍이 선명하게 나있는 두개골을 포함한 5구외 유골 잔해와 유골 발굴단장 박종길씨를 비롯한 10여명의 지역사회연구소 회원들이 1999. 9. 14-16. 3일간 서울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팀과 함께 호명동, 봉계동 장개골에서 다시 제2차 발굴을 시도하여 엎으러진 채 죽은 두개골 1구 외 유골잔해 다량을 발굴하였다.
이 유골들은 여수시의 협조로 1999. 10. 18. 석천사에서 여순사건 호명 봉계지역 희생자 천혼제를 지내고 소라 봉두 시립공원묘지(여순공원)에 장지를 마련하여 그 당시 말없이 희생되었던 희생자의 넋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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