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정권에 대한 중원 왕조의 책봉을 시론함》에 대한 반론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6.27 / 2015.06.27
  • 24페이지 / fileicon doc (MS워드 2003이하)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기본 개념 : 중국 한(漢)나라 이래 중국의 전통적 이민족 지배방식. 한대 이래 중국의 이민족 국가에 대한 지배방식 중 하나인 책봉은 중국의 황제가 주변국가의 군장(君長)에게 특정한 관작(官爵)과 이에 상응하는 물품을 줌으로써 그의 자격과 지위를 부여하고 공인하여 신하로 복속시키는 양식이다. 즉 책봉은 중국이 주변제국의 군장에게 각각의 세력원에 대한 통치를 위임함으로써 그를 대표로 하는 외이(外夷) 집단을 간접적으로 지배하려는 제도적 장치이다. 그러므로 책봉은 중외국관계의 한 유형이며, 중국적 세계질서를 규정하는 제도적 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책봉관계는 주변국이 책봉을 요청하고, 중국이 책봉함으로써 성립된다. 주변제국이 책봉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조공이 선행되어야 한다
I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주요한 근거 중 한가지는 고구려가 중국의 책봉을 받았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민족정권라는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의 책봉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책봉을 받는다고 해서 곧 변방민족정권(지방정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에 정면으로 상치(相馳)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규명하기에 앞서, 동양과 서양의 외교가 서로 판이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대 외교는 서양식 외교다. 30년 전쟁(1618∼1648)과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falen) 이후에 성립된 서양식 외교가 19세기 말 동양에 전파되어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외교가 되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이전의 동양 외교를 인식할 때에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서양식 편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서양식 외교에서는 모든 국가를 평등하게 취급한다. 크건 작건 간에 모두 똑같은 주권 국가로 대우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UN에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에게 거부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EU 이사회의 경우에는 중요 사안에 관해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게는 10표를, 기타 국가들에게는 각각 8표·5표·4표·3표·2표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식 외교는 형식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차등적인 것이다.
반면, 과거 동양의 외교는 이와 달랐다. 외교 형식에 국력의 차이가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개인 간의 신분적 차별이 존재했던 것처럼, 과거 동양에서는 국가간 차별도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래서 강대국은 강대국으로, 약소국은 약소국으로 대우했다. 강대국을 강대국으로 대우하는 것을 사대(事大)라 했고, 약소국을 약소국으로 대우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자소(字小), 한국에서는 교린(交隣)이라 했다. 어차피 차등적인 것은 다 마찬가지였지만, 서양에서는 실질적으로 차등적이었던 데 반해, 동양에서는 형식적으로도 차등적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형식적 차별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책봉(冊封)이었다. 책봉이라 함은, 강대국 군주가 약소국 군주를 특정 관직에 봉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일반인들은 책봉을 받으면 종속국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 책봉의 실태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한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동아시아 국제 질서는 본질적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고구려 시대(중국 측은 남북조 시대)에 중점을 두되, 한나라∼청나라 시기를 전반적으로 살펴 보기로 한다.
1. 책봉은 군주의 임명 요건이 아니었다. 이 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서양국제법상의 국가 원수 승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혁명이나 쿠데타에 의해 새로운 국가 원수가 취임하면, 타국은 그를 국가 원수로 승인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국가 원수는 혁명이나 쿠데타 후의 국내 절차에 의해 통치자가 되는 것이지 타국의 승인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국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타국에 대해 자국을 대표하고 타국과 국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책봉 역시 이와 유사한 측면을 갖고 있다. 중국의 책봉을 받는 고구려 군주의 입장에서 볼 때, 그가 군주가 된 것은 국내 절차에 의한 것이지 중국의 책봉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책봉을 받음으로써 중국에 대해 자신이 고구려 군주임을 주장할 수 있고 중국과 국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장수왕의 경우를 보자. 장수왕은 413년 동진(東晋)으로부터 정동장군으로, 420년 남송(南宋)으로부터 정동대장군으로, 435년 북위(北魏)로부터 정동장군으로, 463년 남송으로부터 거기대장군으로, 479년 남제(南齊)로부터 표기대장군으로 책봉 받았다. 그런데 책봉은 장수왕의 임명 조건이 아니었다. 단지 장수왕을 고구려왕으로 인정하고 고구려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중국 측의 의사 표시에 불과했다. 그가 책봉을 받은 것은 중국 왕조와 관계를 개설하거나 혹은 강화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중국의 동북공정
  • 고구려에 대한 관점지금부터는 동북공정에 관하여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는 고구려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장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중국은 여러 근거를 들어 고구려가 옛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을 한다. 그들이 어떤 근거를 내세우는지 알아보고 반박을 하려고 한다.가. 중국의 주장(1) 민족구성 -고구려 족의 조상은 원래 중국의 한족에서 갈라져 나갔다.① 상나라 설-고구려의 선조는 5방의 개념, 국인과 야인의 구분, 왕위의 형제상속, 사

  • 동북공정에 대한 대책과 논의
  • 고구려 원래 인구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발해로 간 고구려인은 금에 흡수되었다가 한족으로 융합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고구려인이 중화민족으로 융합되었다는 것이다. 이상 여러 가지를 종합해볼 때 고구려는 고대 중국의 지방민족정권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며, 적은 부분의 고구려인이 경외로 융합되었다고 하여 고구려 정권의 귀속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반론: 중국측의 통계는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허구의

  • [한국외교론] 동북공정
  • 고구려는 현도군의 한 현이었다.주몽이 고구려 5부를 통일하고 나라를 세운 곳도 현도군의 영토였다. 고구려의 건국은 이처럼 모두 중국 영토에서 진행되었으므로 오늘의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둘째,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는 주장이다.주몽의 건국 이전에 고구려현은 이미 한(漢)의 현도군에 속했다. 동한(東漢) 180년 동안 고구려는 모두 동한 왕조의 신하였다. 220년부터 426년까지 고구려는 중국 중앙 정권의 신하로 예속

  • [역사분쟁] 중국의 역사왜곡과 동북공정
  • 고구려는 중국 땅에 건국되었고 시종일관 중국 영역 내에서 존재하였다.고구려의 건국지는 한 군현에 속하는 영역이었다.①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잡은 것은 영토패권주의에 불과하다. ② 고구려의 성장은 중국의 한 군현과의 투쟁이었으며 결국 한 군현을 축출하였다. ③ 고구려의 천리장성은 중앙정권과 지방 정권사이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간의 경계를 위해 쌓은 것이다. 조공, 책봉의 성격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중국 황제

  • [인문,역사] 동북공정의 의미와 성격
  • 대한 비판1.논리와 반론: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동북공정’은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으로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근거는 크게 5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중국 측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한국학계의 반론을 중심으로 논리의 타당성을 살펴보도록 하자.첫째로, 고구려의 종족문제를 근거로 들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 종족이 한족의 한 갈래에서 파생한 종족이었다는 설을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