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불상조각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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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불타는 곧 여래(如來)라고도 하는데, 진리를 체득한 사람(覺者)이라는 뜻이다. 원시불교에서는 교주인 석가불만을 불타라 하지만 불교교리의 발전과 함께 많은 종류의 불이 예배되고 또 조상(造像)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이건 실제로 신앙되고 즐겨 조상된 것은 석가불을 비롯하여 아미타불(阿彌陀佛)·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약사불(藥師佛)·미륵불(彌勒佛) 등이다. 또한 53불·천불·삼천불 등과 같은 다불(多佛)과 사방불(四方佛)·오방불(五方佛) 같은 방위불(方位佛)도 만들어졌다.
불상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전해졌고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은 무엇일까?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고구려는 372년)로서, 현존하는 삼국시대 초기의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서울 근교 뚝섬에서 출토된 금동불좌상이다.
이것은 중국의 북위 초인 5세기 초나 중엽의 불상양식과 유사하여 중국에서 전해져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초기에는 대체로 중국식 불상양식을 모방하거나 그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네모난 대좌 위에 두 손을 앞에 모은 선정인의 모습을 한 불좌상은 한국에서 제작된 불상 중 가장 초기의 형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옛 고구려의 도읍인 평양 원오리 폐사지의 소조 불좌상과 옛 백제의 도읍인 부여의 규암면 신리에서 출토된 금동불좌상 등이 있다. 신라에서도 불교가 공인된 이후 6세기 후반에는 대규모의 불상조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되는데, 566년(진흥왕 5) 완성된 거대한 절 황룡사의 절터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장륙의 금동삼존불상의 커다란 석조대좌가 남아 있다.
6세기 후반의 삼국시대 불상 중에는 삼존형식이 많으며, 금동계미명삼존불(국보 제72호)과 황해도 곡산 출토의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제85호) 등은 명문이 포함되어 있다. 표현양식은 중국의 북위 말기 및 동위시대의 조각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세부표현이나 광배의 화염문양, 연화대좌의 표현양식은 중국의 불상들보다 단순화되었고 세부 묘사가 생략된 투박한 기법을 보인다.
석조불상으로서 환조는 별로 없으며, 대부분 암벽에 부조로 표현된 조각이 많다. 그 중 옛 백제지역인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의 태안마애삼존불(보물 제432호),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서산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 등이 삼국시대의 대표적 보살상 형식이다.
또한 반가사유보살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서산마애삼존불의 좌측 협시, 경주 근교의 단석산 신선사의 마애불상군 중 반가사유보살상, 고구려의 금동미륵반가상(국보 제118호) 등이 전하고 있다.
삼국시대 말기인 7세기 중엽에는 법의 표현도 자연스러워지며, 상의측면·뒷면의 묘사에도 관심을 두어 입체조각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7세기의 석불상으로는 경주배리석불입상(보물 제63호)·경주남산삼화령석조삼존불상 등이, 금동불상으로는 백제 규암리사지의 금동보살입상 2구, 경상북도 선산(善山) 출토의 금동보살입상 2구(국보 제183호·제184호) 등의 관음상이 대표적이다. 삼국시대 말기 보살상의 표현에 있어서는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 초기의 불상양식의 영향이 반영된 조형적 특징들이 나타난다.
정리해 보면,
삼국시대 불상의 공통적인 양식 중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몸은 살이 빠지고 가름하다. 2)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다. 3) 법의(法衣)는 통견(通絹)이고 두껍다. 4)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고 수인은 통인(通印)이다. 5) 반가(半跏)형식의 미륵보살상(彌勒菩薩像)이 유행하였다. 6) 삼국시대 말기에는 암석에 감실(龕室)을 파고 감실 안에 불상을 조각하는 석굴조각의 초기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등의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불상의 특징
372년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북위의 양식을 반영한 불상이 조성되었음을 남아 있는 유물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고 불교유적과 사료들을 통하 여 7세기 이후 도교와 경쟁하기 전까지 국교적 위치를 누리며 발전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고, 불상 조성 또한 그에 걸맞은 수준의 조형미를 갖추었을 것이다. 와당이나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려의 미술은 힘과 동감이 넘치고 정열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현존하는 몇 구의 불상을 통하여 그 특성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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