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한국의 연회 생일 반모 임문화의 차이 중국의 체육대회 유학생들을 위한 행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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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에온지 3개월 정도 되었고 어느 정도 中國文化와 生活에 대해 익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 할 때마다 가끔가다가 놀라게 된다. 中國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친구들이 초청한 모임에도 많이 참석해 보았고 거기서 난 "내가 정말 中國이라는 나라에 왔구나" 라고 새삼 느낄 만큼의 경험을 한 것 같다. 한국문화만을 접해왔던 나에게는 中國친구들과의 모임은 항상 새롭게 느껴 질수밖에 없었고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中國과 韓國간의 文化的인 差異를 느낀 것은 10월의 어느 날 이였던 것 같다. 10월의 어느 날 정확히 며칠 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초반에 哈爾濱 에 왔을 때부터 많은 도움을 준 中國친구의 생일이라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초대를 받아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생일파티에 참가하기 전에 난 은연중에 "생일이니까 밖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당연히 술집에 가서 술을 먹겠구나" 라는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문화를 생각하고 갔다. (참고로 그 친구가 나보고 케이크를 사오라고 했는데 中國의 케이크는 굉장히 비싸다. 그 이유는 생크림을 만들 때 쓰는 우유 때문인데 中國 땅이 굉장히 넓다보니 생크림을 만드는 우유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케이크가 우리나라와 값이 비슷하다고 한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모양은 정말 안 예쁘다. ) 본과생 3학년인 인도친구와 러시아 친구들과 같이 그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갔다. 내가 살고 있는 A동에서부터 C동까지 20분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에 벌써 여러 명의 中國人 친구들과 다른 러시아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中國인 친구가 러시아과여서 러시아 친구들이 많이 참석했다. 듣기로는 黑龍江 大學校의 러시아과가 중국의 여러 유명한 大學 중 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 친구들과 함께 C동 기숙사로 들어가서 생일 파티 준비를 했다. 내가 생일 파티를 하면서 처음으로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여러 中國人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중국에서는 생일날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을 한다고 하는 것 이였다. 사먹는 것에 익숙한 나로써 는 이런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약간은 사람 냄새나는 그런 풍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中國에 와서 처음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생일파티를 준비해 나갔다. 中國人 친구의 생일에 오기 전에 선물을 무엇을 할지에 대해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일선물로 주지 말아야 할 물건들이 있듯이 中國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생일 때 주어서는 안 될 선물들이 몇 가지 있는 것을 수업시간에 배운 적 이 있었다. 韓國에서는 생일선물로 신발이나 손수건등 을 주면 안 되는 물건이라고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 한다. 신발이나 손수건들이 이별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한번 도 받아 본적도 줘 본적도 없어 이 말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韓國에 있을 때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中國에서도 생일선물로 줘서는 안 되는 물건으로는 시계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 그 이유는 시계를 주다의 발음이 임종을 지키다 , 장례를 치르다 의 送 의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목시계는 괜찮다고 한다. 만약에 中國에 와서 생일 선물로 절대로 친구 간에나 특히 연령이 많으신 노인이나 어른들에게 이런 선물을 했다가는 굉장한 오해를 살수도 있다. 그리고 선물로는 적합하지는 않지만 거북이도 선물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中國에서 대다수의 안 되는 선물들의 이유 중 하나가 발음 때문인데 거북이 또한 발음이 욕설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선물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 밖에도 녹색을 띤 모자도 비교적 나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생일 때나 비교적 경사적인 일이 있을 때 흰색모자나 녹색 모자를 쓰고 가면 실례라고 한다. (흰색 모자는 상을 당했을 때 쓰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녹색모자는 비교적 안 좋은 뜻을 포함하고 있어서 中國 靑少年층들도 녹색모자는 사지 않을뿐더러 中國 상인들은 팔지도 않는다. 中國에 와서 흰색모자나 녹색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분명 韓國人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中國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음식을 만들었다. 中國남자애가 中國전통요리를 만드는 걸 옆에서 도와주면서 각국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에 비해 비교적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 음식을 먹으면서 진심으로 中國친구의 生日을 축하해주었다. 또 하나 다른 점이 中國의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래문화이다. 지금까지 갔던 모임 중에서 정말 한 번도 빠짐없이 노래를 불렀던 거 같다. 그만큼 그들의 모임에서 큰 차지를 하는 것이 노래 文化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굉장히 쑥스러워 할 텐데, 中國은 노래 부르는걸 굉장히 즐겁게 여긴다.( 결국은 다른 中國人 친구들과 인도인 본과생 친구의 등쌀에 떠밀려 中國에서 굉장히 유명한 우리나라 노래인 신 승훈 씨의 I BELIEVE 을 부 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 당시는 정말 곤욕이었다. 하지만 이날 때문에 이후에도 다른 中國人 친구의 생일에 매번 이 노래를 불러야만했다.) 이 친구의 생일이 지나고 며칠 후에 우리 반 모임 때에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한 시간 가량을 각국의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는데 이와 같이 中國의 어느 모임이나 연회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노래라고 볼 수 있다. 연회에서의 노래문화, 분위기를 이끌 수 있고 단결시킬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다 는걸! 中國에 와서, 여러 모임을 참가하면서 알게 되었다. 각국의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을 노래로 찾은 셈이다. 中國에 오기 전에 몇 곡의 노래는 외워 오는 것은 어떨까??? 그럼 한결 中國 친구들과의 사이가 빨리 가까워 질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中國의 體育大會>
哈爾濱 에 온지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나서 黑龍江 대학교에 체육대회가 열린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마침 그 다음 주가 國慶節이라서 그런지 우리는 체육대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어디를 갈지 에만 고심하고 있었다. 더 군다만 유학생들은 달리기 밖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그런 소리까지 있었기 때문에 黑龍江 대학교의 체육대회는 우리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나의 輔導인 菲菲 가 자기학과의 체육대회에 같이 한번 가보지 않겠냐는 말에 기대 반 호기심 반 귀찮음 반으로 따라갔던 적이 있었다. "체육대회이니 축구도 하고 농구대회도 하고 그러겠지, 아마 중국 여학생들의 응원전도 볼만 할꺼야" 라는 생각으로 구경이나 할 겸해서 같이 따라 나섰다. 韓國에 있을 때에는 여 학우들의 응원을 보는 재미로 갔던 나였기에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 黑龍江大學은 綜合大學이라 그런지 면적이 굉장히 넓은 편이였다. 운동장도 굉장히 넓고 잔디까지 완비되어있었다. 한국에 있는 우리 학교와는 솔직히 비교가 많이 되었다. 菲菲의 안내에 따라 기숙사에서 한 10분정도 떨어진 학교 운동장에 도착한 나는 학교 체육대회의 모습에 조금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대회와 농구대회는 고사하고 학생들이 달리기만 주구장창하고 있었다. 그것도 남자와 여자가 같이 400미터 트랙을 번호표를 달고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것 이였다. 菲菲에게 중국 체육대회에는 축구경기나 농구경기 같은 구기종목은 없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기대했던 응원전도 그 전날에 끝났다고 그랬다. 사실 나의 목적이 치어리더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허무했다. 열렬한 中國학생들의 응원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운동장에서 나왔다. 菲菲 역시 이튿날 째 응원에 참가했어야 했는데 참가를 안 해서 교수님에게 걸리면 안 된다고 그랬기 때문에 서둘러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이렇게 학교 체육대회에 데리고 와준 菲菲 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조금이나마 中國의 文化를 알려주고 싶어 하는 그녀의 호의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菲菲덕분에 中國대학의 체육대회가 어떤지도 보게 되어서 나름 값진 하루였었다고 생각했다.
<留學生들을 위한 行事文化>
내가 온 이곳 哈爾濱은 도시 자체에 비교적 韓國人 留學生들이 많은 편이였다. 東北쪽( 黑龍江省 吉林省 遼寧省) 세 개의 성의 中國語 발음이 비교적 표준에 가까워 전 세계의 中國語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로 이곳 하얼빈시는 留學生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그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다른 2개의 성보다는 黑龍江省의 발음이 특히 표준발음에 가깝다고 한다.)다른 지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黑龍江 大學校의 留學生들을 위한 행사는 비교적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모임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하는 행사까지 그 수가 다행한데,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직접 참가한 배드민턴 대회 및 줄넘기대회와 中國傳統놀이행사 그리고 아직은 하지 않은 준비 중이고 계획 중인, 12월초에 있을 中國語 노래대회와 中國語 연극대회이다. 中國에 와서 가장 먼저 한 행사는 10월 달에 한 배드민턴 대회였다. 10월 중순에 한 배드민턴대회에는 비교적 많은 인원들이 참가해서 각축을 벌였다. 中國의 일상적인 체육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배드민턴을 학교의 주최 하에 하루일정으로 대회를 열었다. 인도인 친구 스페인 계통의 중국인 친구 日本人 친구 누구나 할 것 없이 굉장히 진지하고 불꽃 튀는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중급 2반의 한국 사람이 우승했다. (나는 8강에서 떨어져버렸다.) 우승한 사람이 전에 배드민턴 선수였다. 하지만 누가 우승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이런 계기를 통해서 한국 사람끼리 안면도 익히고, 여러 각국의 外國人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함으로써, 유학생활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배드민턴 대회와 비슷한 시기에는 반 대항으로 줄넘기 대회가 있었는데, 이런 대회 또한 학급의 친밀과 단결심을 만들 수가 있었고,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이 대회에서는 각반에 두 팀이 출전하는데, 우리 B팀은 53개로 2등을 했다. 얼마나 기쁘던지.. 그 전날 학급친구인 美麗舞의 혹독한 훈련에 의해서 얻은 2등이라 더욱 값졌다. 그래서 커피를 상품으로 받았다.) 공부에 스트레스가 쌓인 우리들은 학교의 이러한 행사를 통해서 해소할 수 있었다. 黑龍江 대학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되는 점은 中國人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과의 서로 교류 할 수 있는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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