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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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 성적 15등이었다.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작전에 110회나 참가하다.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일본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같아 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여 피난민 대열에 끼어 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후일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좌익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 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천명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자기만 살아 남는다.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고 기회주의자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인물이었다. 속성이 이런 인간이니 일본 패망 후 곧 바로 광복군으로 위장하여 합류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던 일본의 진짜군인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광복군 흉내를 낸 것이다.
2) 그는 카리스마가 있는가?
-> 물론 그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모두가 좋게 평가하면 그럴 수 있을 테지만, 균형적인 시선으로 볼 때 그의 정치적 성격의 아집과 독선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킨 민족주의자인가?
->박정희 식의 산업화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형태의 산업화도 가능했을 것이고, 일련의 경제발전의 성과의 공을 일개 개인의 정치 지도자에게 모두 환원시킨다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현장에서 노력했던 노동자야말로 경제발전의 최대 공로자이고,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박정희가 민족주의자라는 의견에 대해서 비판하는 입장은 진정한 민족주의자라면 남한의 발전만을 내세우기보다는 북한을 포용하여 민족 전체의 번영과 발전을 도모하는 원대한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4) 그의 경제발전 스타일이 꼭 정석인가?
-> 사람들은 결과만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발전의 신화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농민과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한 그의 경제발전 스타일이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의 경제개발에서는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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