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대한 불신과 그 해결방안에 관한 고찰 다크히어로에 대한 논의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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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정의와 선을 등에 지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싸우는 자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영웅의 모습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다루어졌고, 막강한 힘으로 정의를 지키는 영웅들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문화콘텐츠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모습은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부각된 영웅의 모습은 과거의 영웅상과는 달리 보편적 정의와 선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들이 악을 처단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사연이나 사상에 의한 것이며,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선과 정의의 구현이 아니라 악의 본질적 파멸에 가깝다. 때문에 이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때로는 악의 입장에 서거나 혹은 법적인 제약을 넘나드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새로운 유형의 영웅상은 다크히어로, 혹은 안티히어로라고 불린다.
이러한 다크히어로의 대표격으로 먼저 영화 다크나이트에 등장하는 배트맨을 들 수 있다. 배트맨은 부모가 악에 의해 살해당한 과거에 대한 강력한 트라우마, 그리고 악에 대한 증오와 공포심 때문에 때때로 일반인보다 정신적으로 더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악의 처단을 위해 활약하는 것은 개인적 과거사에서 기인한 고뇌 때문이다. 과거의 영웅들이 유머러스하고 일반적으로 쾌활하며 정의에 대한 신념으로 정신무장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배트맨은 이전의 영웅, 특히 흔히 슈퍼맨으로 대표되는 슈퍼히어로와는 달리 본질적으로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영웅이 아니다. 재산이 매우 많고 선진적인 과학의 힘을 이용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신체적으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악의 처단을 위해 불법도청장치나 불법 개조된 무기, 차량을 이용한다. 또한 악인에 대한 폭행과 협박, 필요하다면 고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는 영웅이라기보다 정의의 이름으로 불법행위를 남발하는 범법자에 가깝기도 하다. 물론 과거의 영웅들도 악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폭력은 아름답고 정당한 것으로 그려졌으며, 민중들의 지지는 물론 경찰과 사법기관 등의 암묵적 지지와 동의까지 받았다. 배트맨이 경찰과 사법당국에게 범법자로 낙인찍히고 부패한 경찰에게 적으로 규정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배트맨에 등장하는 경찰과 사법당국은 부패의 온상이자 저항의 대상일 뿐이며, 결과적으로 영웅에게 열세한 집단일 뿐이다.
다크나이트 등의 영화 이외에도 다크히어로에 대해 다룬 문화콘텐츠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연쇄살인마를 살해하는 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 덱스터, 이름을 적으면 상대를 살해할 수 있는 노트를 이용해 악행자를 처단하는 만화 데스노트 등이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가깝게는 악인을 본능적으로 찾아내는 능력으로 악인을 살해하는 살인마의 이야기 ‘살인자 O난감’ 이 네이버 웹툰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이다. 이러한 콘텐츠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 또한 다크나이트의 배트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신체적, 능력적으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정신적인 고뇌와 결함을 안고 있다. 또한 법에 직간접적으로 저항하며, 결과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법과 집행기관에 대해 우세를 점한다. 본질적으로 인간과 다르지 않은 이러한 유형의 다크히어로들은 과거의 초월적 히어로들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어째서 오늘 날 사람들은 다크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일까?
Ⅱ. 법에 대한 불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콘텐츠들에 공통적으로 제시된 무능하고 부패한 법과 집행기관의 모습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 우리는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법보다 먼저 악을 처단하는 다크히어로에 열광한다. 이는 법과 형벌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우리의 도덕적 감정은 이를 옳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 뒤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겠지만, 예컨대 수백억을 탈세하고도 아주 약한 처벌을 받는 기업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분노한다. 혹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범죄로 규정되어선 안 되는 사안이 범죄로 규정되어있는 모습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흔히 응보적인 관점에서 범죄자들은 그들이 행한 범죄에 합당한 처벌과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현행의 법과 그 집행은 이를 경시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다수 존재한다. 이처럼 많은 이유들이 법, 특히 형법에 관한 불신을 낳고 있으며, 때문에 법에 저항하여 불법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악인을 처단하는 다크히어로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혹자는 다크히어로에 열광하는 이유는 대리만족이나 혹은 악을 처단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웅적 행위에 대한 대리만족은 분명 과거의 초월적 히어로에게서 더 쉽게 획득할 수 있다. 또한 다크히어로에게서 느끼는 대리만족은 초법적 행위로 악을 처단하는 데에서 오는, 법에 대한 풍자적 성격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데스노트’에서 나타나는 경찰과 사법기관의 모습은 주인공의 능력에 겁을 먹고 주인공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무능한 집단일 뿐이다. 여기에서 독자는 주인공이 법과 그 집행기관을 농락하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다음으로 악을 처단하는 행위는 과거의 영웅도 공유하는 것이기에 다크히어로에 대한 열광의 이유로 제시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나아가 누군가는 과거의 식상한 영웅 상에 대한 싫증 때문에 다크히어로에 열광한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어느 정도는 타당한 주장이지만, 그렇다면 왜 그 새로운 영웅이 법과 그 집행에 적대적인 다크히어로여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다크히어로에 대한 열광의 밑바탕에는 법과 형벌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보편적으로 법과 형벌은 정의를 토대로 구성, 실현되며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성립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정의와 합의를 통해 구성된 이러한 법과 형벌에 대해 반발하고 불신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불신의 풍조가 심화되면 어떠한 결과가 유발되며 그 해결책에는 무엇이 있을까?
Ⅲ. 법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먼저 대중들이 법, 특히 범죄에 대한 형벌과 그 집행에 대해 불신감을 갖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날 우리는 과거에 비해 대단히 다원화되고 복잡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행동의 유형들이 생겨났다. 특히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혹은 범죄로 규정되지 않았던 다양한 행동양식들이 새롭게 범죄로 규정되고 이에 대한 처벌의 조항이 새로 제정되었다. 따라서 다양한 범죄에 대한 재판과 처벌의 빈도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급속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앞서 제시한 사례들처럼 재판과 처벌의 부당한 사례를 자주 접하고 있으며, 따라서 법과 형벌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어떤 재판과 처벌의 사례를 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어째서 사람들은 법과 형벌을 불신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을 3가지 조항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았다.
1) 정의의 문제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라는 단어자체를 분석해 보면 바를 正자, 옳을 義자로 구성되며, 올바른 것, 혹은 마땅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올바른 것, 마땅한 것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으로서 보편성을 갖기 어렵다. 예를 들어 ‘데스노트’에는 악인을 살해하여 평화를 이룩하려는 주인공 라이토와 이러한 살인행위를 저지하고자 하는 명탐정 L이 서로를 생각하며 ‘내가 정의다’ 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라이토에게 있어서 정의란 간단히 말해 악인을 처형하고, 이를 통해 일반예방의 효과를 얻으며, 나아가 범죄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L의 정의는 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이러한 사적 살인행위를 저지하고 살인자 라이토를 심판하는 것이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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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참고문헌
아르노 기그 저. 민혜숙 역. 『법, 정의, 국가』. 동문선. 2003.
해럴드 페핀스키, 폴 제실로 저. 이태원 역. 『범죄에 관한 10가지 신화』. 한울. 2010.
노베르트 회르스터 저. 윤재왕 역. 『법이란 무엇인가?』. 세창. 2009.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저. 민경국 역. 『법·입법 그리고 자유』. 자유기업센터. 1997.
지광준 저. 『현대사회와 형벌』. 강남대학교 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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