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탐방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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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교양 수업인 ‘기독교와 문화’에서 문화탐방을 하게 되었다. 주제는 각자 마음에 드는 공연이나 미술관 또는 박물관들을 둘러보고 그에 대해 느낀점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뮤지컬 공연을 보고 쓸까하고 고민하던중에 같이 수업을 듣는 동아리 후배와 함께 서울 광화문 탐방을 하게 되었다. 후배는 우리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 1000원으로 시작하는 서울의 역사‘를 바탕으로 코스를 정해 왔다.
일단 광화문에 있던 교보문고에서 만나서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어떠한 일정으로 갈것인지 물어보았다. 코스는 광화문 동아일보 건물에 있는 신문박물관 → 서울역사 박물관 순서 였다.
일단 신문역사박물관으로 갔다. 들어가기 전에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겼다. 왜냐하면 군대를 갔다와서 복학까지 10개월이라는 시간은 남았는데 집에서 놀고있을수도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광화문에 있는 서울신문사의 자료실관리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자료들을 보면서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 호기심을 풀수 있을꺼 같았기 때문이다.
신문역사박물관은 동아일보 신문사 건물의 3층에 있었다. 입장료는 3천원이었는데 그중 천원은 신문을 만드는데 쓰인다고 하였다. 3층은 여러 가지가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국내외 신문사의 신문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로 된 신문은 물론이고 이슬람계의 신문들도 있었다. 그나마 영어신문은 조금이라도 알아볼수 있었지만 그 외에 다른 신문들은 사진만 볼뿐이었다.
그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과거의 인쇄기였다. 가장 한가운데에 가지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인쇄에 사용되는 활자였다. 지금이야 하나하나 컴퓨터로 글자를 쳐서 입력시켜 인쇄하지만 초창기의 신문들은 납인쇄라고 하는 방식을 통해 인쇄되었다고 한다. 납인쇄란 글자 하나하나를 활자로 만들어서 기사에 쓰일 내용대로 연결해서 도장찍듯이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굉장히 특이한데다가 글자를 직접 찾아서 연결해야된다니 손이 많이 가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납으로 만들어져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하고 다시 녹여서 글자를 주조해야 된다고 하니 참으로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쩔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박물관에 나와있는 현대 기록중에 특이한 것으로는 우리나라의 인구 천명당 보급부수였다. 우리나라의 일간지 보급부수는 약 412만부 미국은 236만부, 평균은 308만부로 상당히 높은 수치였다. 그러나 발행부수로는 미국이 약 6천만부 우리가 2210만부로 약 1/3 수준에 불과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신문에는 뉴스기사가 많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반대인 신문기사가 약 47% 광고가 53% 정도로 신문에는 뉴스기사 내용보다 광고가 더 많은 것이 특이했다. 하지만 요즘같이 외국에서도 유명한 신문사들이 재정상태가 좋지않아 파산하는 상황에서 계속 유지를 하려면 광고수입을 벌어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전에 신문사에서 일할때에 들었는데 실제로 우리나라 신문사중 적자를 내지 않는 곳은 조선일보밖에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 잡았던 것은 우리나라 신문의 역사였다. 비록 모든 신문을 다 볼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문사들이 어떠한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해 왔는지 한눈에 볼수 있도록 연대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등학교때 국사책에 보면 손기정씨께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만 신문에서 일장기를 지운채 발간하였다는 내용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서 동아일보는 1년동안 일제에 의해 발간이 정지되고 다른 신문사는 그것으로 인해
폐간이 되어다니 씁쓸하지 않을수 없었다.
최근에 유신정권의 시절에도 신문을 검열하였다고 한다. 검열관이 직접 신문내용을 검토하고 수정을 하라고 지시하기도 하고 완료가 되면 검열도장을 찍어주여야만 발행이 되었다니 그 시절에 살던 사람들은 얼마나 올바른 뉴스를 제대로 볼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에 의해 데모가 많이 일어났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친척이 한양대 근처에 살았는데 갈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최루탄으로 인해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를 하였는지 보여주는 물건들이 있었다. 바로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을 할 때 쓰던 그런 마스크를 쓰고 돌이나 화염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헬멧까지 쓰고 취재를 하였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기자들은 얼마나 살떨리는 상황이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이렇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광고였다. 신문에서 광고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던 것은 1886년의 한성주보라는 신문에 실린 독일무역회사 세창양행의 고백이라는 광고라고 한다. 이 최초의 광고에는 그림이나 사진이 없이 순수한 글로만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사진이나 그림없이 글로만 이루어진 광고라니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사실이었다.
광고에 그림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것은 다음 해 같은 회사의 석유광고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 지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광고를 볼수 있었다. 바로 일제강점기의 광고였다. 이 때의 광고들은 하나같이 일본어 일색이었다. 게다가 등장하는 그림의 인물은 언제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광고들은 역시 사진이나 그림으로 그 당시 사회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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