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고분 발굴 이야기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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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고학을 공부한지 약 일년이 된듯합니다. 일학년 ‘유적과 유물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고고학 보고서라는 것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또 선배들을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고학대회를 가보았습니다. 이제 막 고고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입장에서 그 경험은 한마디로 ‘어렵다’였습니다. 한자어와 장황한 문체들, 딱딱하기 그지없는 소결들과 알 수 없는 실측 도면들이 보고서에 대한 이미지였으며, 저명한 선생님들의 발표는 ‘공부하고 와서 들어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고고학은 어렵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교수님은 박물관에 가면 꼭 전시 공간 앞에 걸린 설명들을 읽어 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어떻게 대중들에게 잘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청자실에 있는 ‘상감’과 ‘박지’와 ‘조화’의 차이를 모릅니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은 고구려토기와 백제토기, 신라토기의 차이를 모릅니다. 하지만 박물관에 걸린 설명은 읽기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게 고고학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던 중 일본인 학자를 보았고, 그 분의 설명방식이 매우 쉽게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문학 스테디셀러중 하나인 웨난의 발굴 시리즈를 알게 되었고, 고분, 절터등의 고고과 발굴을 매우 흥미있는 문체와 형식으로 적어놓아 대중에게 친숙하게 읽히고 있었습니다.
조유전 선생님의 [백제 고분 발굴이야기]는 이처럼 고고학을 쉽게 접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쓴 것 같습니다. 백제 고분의 형식보다는 백제의 고분을 발굴한 사람을 중심으로 쓰고 있습니다. 발굴당시의 기사나 경험담 인터뷰 내용을 풍부하게 실고 있으며 어려운 고고학 용어와 매우 세부적인 내용은 모두 생략하였습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온조에 의해 서울 부근에 세워졌으며 그후 시기 475년에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개로왕이 죽고 웅진, 지금의 공주로 수도를 옴깁니다. 63년후인 서기 538년 성왕이 사비, 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나라이름을 남부여로 합니다. 사비시대의 백제는 의자왕 서기 660년까지 존속되다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백제는 삼국사기와 동명왕 설화에서 보여주듯 고구려의 지배계급에서 파생되어 왔음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초기의 고분 양식 역시 비슷한 적석총형태를 띄고 있다고 하며, 그 증거로 서울부근(석촌, 방이)등의 고분이 있습니다. 물론 적석, 즉 돌무지 무덤이외에도 돌방-석실묘나 돌덧널무덤-석곽묘도 있다고 합니다. 웅진시대의 백제의 고분은 송산리에 집중하고 있으며 수촌리에도 있습니다. 형식은 돌무지 무덤은 사라져가고 돌방무덤이 보입니다. 특이한 점은 중국의 양나라에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전축분이 나오게 되는데 그 유명한 ‘무령왕릉’이 바로 벽돌로 쌓아 만든 묘제입니다. 사비시대의 백제의 고분은 능산리 주변으로 보여지며 형식은 장방형의 돌방무덤이 주를 이루며 석곽이나 독무덤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남석 『백제의 무덤이야기』주류성 2005 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따라서 본책에서는 무덤의 양식적인 정리는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백제의 고분은 일제시대를 비롯하여 많이 도굴된 상태이기도 하지만, 무령왕릉처럼 고고학적으로 매우 귀중한 무덤이 있기도 합니다. 비록 통일을 이룩한 신라 연구의 양적인 면이나, 동북공정과 북한학계의 노력으로 인한 고구려의 연구에 비해 연구의 양과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특히 백제는 일본과의 연계성 때문에 아마추어학자들에 의한 과장된 논리나 추측성 이야기가 많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전문 고고학자가 물질자료의 집약인 고분의 발굴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게 쓰려 했다는 점, 그로 인해 학술적인 연구논물을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려 한 점이 매우 높이 살만 합니다.
2.책의 구성과 간략한 내용
책의 목차를 살펴보겠습니다.
서론
한성백제의 무덤
1.한성백제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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