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옹관묘를 통한 마한 사회 재조명-옹관묘와 마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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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1. 서론
가. 옹관묘를 탐구하는 이유
1) 마한에 대한 기록 부족
나. 옹관묘와 마한 사회의 관계
2. 본론
가. 옹관묘
1) 옹관묘의 개념과 등장배경
2) 옹관묘의 구분
3) 옹관묘의 시대 구분과 지역적 분포 및 특징
가) 옹관묘의 시대 구분
나)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의 조사와 연구
다)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의 변천 과정
라) 옹관고분의 지역별 분포와 특징
나. 영산강유역의 옹관묘와 마한사회
1) 영산강 유역의 지역적 특징과 마한사회 형성
가) 영산강 유역 일대의 옹관묘 사회(소국연맹체) 세력형성 배경
나) 마한사회 형성
다) 마한 사회의 지배 세력
라) 부장품을 통해 바라본 마한 사회의 사회 구조 및 문화(생활양식 및 신앙포함)
2) 대형 옹관고분 사회
가) 마한의 묘제와 마한의 매장시설
나) 대형옹관고분 등장의 배경과 의의
다) 대형옹관고분사회의 중심지이동(영암군 시종면 → 나주 반남면)
3) 옹관고분사회의 대외교류
가) 대형 옹관고분의 입지지형과 출토유물을 통해 바라본 대외교류
나) 고대 일본에 전파된 옹관묘
다. 영산강유역 마한사회의 쇠퇴
1) 마한세력의 해체
2) 횡혈식 석실분의 등장과 마한의 정체성 상실(자발적 백제화)
3) 마한을 복속한 백제, 그리고 그 이후
4) 나주복암리 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
5) 문헌사와 고고학계의 마한에 소멸에 관한 쟁점
3. 결론 : 마한사회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의 역사적 의미
4. 참고 자료
본문내용
다) 마한 사회의 지배 세력
마한의 정치적 성격을 생각할 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마한을 구성한 기본단위는 소국이었다는 점이다. 이 소국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립 시기나 성립주체를 달리 하면서 각처에 산재하여 있었고 이들은 맹주세력을 중심으로 연맹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소국들의 구조를 보면 기본적으로 몇 개의 읍락으로 구성되고 그 중심이되는 읍락이 國邑(국읍)으로서 정치적 治所(치소)가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斯盧國(사로국)이 六村(대촌)으로 구성되고 駕洛國(가락국)이 九村(구촌)으로 구성된 데서 입증이 된다.
소국을 구성한 읍락들은

其俗重山川(기속중산천) 山川各有部分(산천각유부분) 不得妄相涉入(부득망상섭입)

에서 보듯이 배타적 속성이 강하였고 또 「國邑雖有主帥(국읍수유주수) 邑落雜居(읍락잡거) 不能善相制御(부득선상제어)」에서 알 수 있듯이 국읍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정치적 자립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읍락들이 小國(소국)의 국명으로 대변되고 있다는 것은 國邑(국읍)의 정치적 통합기능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각처에 산재한 이러한 소국들은 철기문화의 보급의 확대와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마한 연맹체내에서도 일정지역의 소국들이 경제적 교환이나 적대적인 세력에 대한 공동방어 등의 목적 하에서 보다 강한 결속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마한연맹체 내에서 형성된 지역연맹체가 어느정도였는지는 분명히 하기 어려우나 위례의 백제국 세력ㆍ稷山(직산)의 목지국 세력ㆍ익산의 건마국 세력ㆍ영산강 유역의 新彌국세력 등은 지역연맹체를 형성한 중심세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직산의 목지국 세력은 이러한 지역 연맹체를 형성한 세력 중에서도 가장 우세한 세력으로서 많은 추종소국을 거느린 세력이었고 그 기반위에서 마한의 맹주국이 되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4. 참고문헌
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대) 옹관』, 학연문화사, 2009.
나. 강봉룡, 「영산강 유역 '옹관고분'의 대두와 그 역사적 의미 -
타지역 옹관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99.
다. 성낙준, 「영산강유역 甕棺古墳의 성격」, 역사문화학회, 2000.
라. 강봉룡, 「영산강 유역의 고대 사회와 나주」, 학연문화사, 1999.
마. Laurene DENES(프랑스 파리 7대학),「영산강 유역의 대형 옹관묘」, 1996.
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한국의 옹관묘 - 전라남도편』, 학연문화사, 2010.
사.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영산강문화권』, 역사공간, 2006.
아. 원작KBS역임영진 「 묘제를 통해 본 마한의 지역성과 변천과정- 백제와의 관계 중심으로」
자. 임영진,「묘제를 통해 본 마한의 지역성과 변천과정- 백제와의 관계 중심으로」,백제학회, 2005.
차. 박찬규 「 문헌을 통해서 본 마한(馬韓)의 시말(始末) 」, 백제학회 , 2010.
카. 국립나주 문화재 연구소, 『한국의 고대옹관』,학연문화사, 2009.
타. 강봉룡, 「3~5세기 영산강유역 ‘甕棺古墳社會(옹관고분사회)’와 그 성격」, 역사교육연구회, 1999.
파. 박찬규, 「문헌을 통해서 본 마한의 시말」, 백제학회, 2010.
하. 노중국, 「마한의 성립과 변천」, 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 연구소, 1987
A. 이정호, 「전남지역의 옹관묘 : 대형옹관고분 변천과 그 의미에 대한 시론」, 호남고고학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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