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택시를 탄다 소설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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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7 / 201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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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터넷 쇼핑을 한다. 컴퓨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자세로 앉아서 마우스의 스크롤바를 내린다. 요즘 최신 유행하는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옷 중 조금은 특별하면서도 저렴한 가격대의 아이템을 물색 중이다. 맘에 드는 것을 발견한다. 나의 집중력은 고조된다. 너무 많은 용량의 사진으로 인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드디어 완료라는 글자가 익스플로러 하단에 있는 작업표시줄에 뜬다. 인터넷쇼핑몰 모델의 사진을 보면서, 과연 내가 입으면 어떤 핏이 나올지 정신없이 계산한다. 다시 한 번 모델의 가느다란 미친 기럭지를 확인해준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서 ‘뒤로’라는 초록색 화살표를 클릭한다. 나는 이렇게 약속 없이 집에 있을 때에도 혼자서 잘 논다.
이 때, 부엌에서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바쁘게 저녁밥을 하시던 엄마가 내 방에 꽁꽁 숨어 있는 나를 향해 애타게 소리친다. “오이랑 양파 좀 사와라” 나는 귀찮아하며 뭉그적뭉그적 거리며 잠바를 챙겨 입는다. 엄마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서 내 발보다 큰 남색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간다. 나는 패트라마트에 간다. 집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오이가 잔뜩 쌓여있다. 내 마음대로 예쁘게 생긴 걸로 고른다. 양파는 망에 쌓여 있어서 잘 모르겠다. 아무거나 집는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여러개 고른다. 40퍼센트 세일이다. 계산을 한다. 마트 조끼를 입은 언니, 아니 젊은 아줌마는 딱 한마디 말한다. “팔천구백원입니다.” 엄마는 내가 사온 영수증을 체크한다. 좀 더 걸어가면 있는 그린마트에 가서 싸게 사오지 않고, 무엇이든 비싸게 파는 패트라마트에서 사왔다고 나에게 잔소리 하신다.
나는 패밀리마트에 간다. 세븐일레븐도 아니고 GS25도 아니고 꼭 패밀리마트에 간다. 앞머리를 실핀으로 올리는 친구와 붙어 다녔던 시절, 친구는 나의 앞머리도 올려주며 말한다. 실핀은 꼭 패밀리마트에서 파는 파리 실핀(파리눈알 색깔처럼 보랏빛이 도는 남색의 실핀)을 써야한다고 강조한다. 그 후 급할 때는 눈에 보이는 다른 편의점에 가서도 실핀을 찾지만, 완전 검은색 실핀 밖에 없다. 파리 실핀은 패밀리마트에만 있다.
높은 언덕과 두 번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내 체력의 한계를 실험한 후에 학림관에 도착한다. 간만에 운동을 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벌써 육신이 지쳐서 강의시간에 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나는 학림관 1층에 있는 ‘패마’에 간다. 커피우유를 챙긴다. 멋있는 사람이 있다. 눈이 돌아간다. 하지만 난 빨리 계산을 하고 4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오늘은 지각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본 편의점 중 가장 장사가 잘되는 학림관 ‘패마’의 점원들은 계산이 너무 많이 밀려있지 않는 한 습관적으로 인사를 꼭 한다.
나는 모닝글로리에 간다. 다양하고 예쁜 아이템들로 가득 차있는 우리 동네 모닝글로리에 간다. 10프로씩 적립도 꼭 해준다. 벌써 4천원 가까이 모았다. 만족스럽게 돈을 쓰고 나오는 곳이지만, 계산을 해주는 주인아저씨가 싫다. 키가 크고 비쩍 말라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뭔가 까칠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물건을 계산하는 데, 그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내 기분까지 매스꺼워진다. 계산 실수도 빈번히 하기 때문에 정신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멍하니 있으면 생돈을 날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한번은 모닝글로리 앞길을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다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는 예의상 살짝 목례만 하고는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졌다며 씩씩거리며 가던 길을 걸어간다.
나는 택시를 탄다. 지각을 한 날은 집에서 신도림역까지 택시를 탄다. 세상에는 다양한 택시운전사가 있다. 내가 공감할 만한 음악프로그램을 묵묵히 들으며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분이 제일 좋다. 뉴스도 들어줄만 하다. 그러나 자꾸 말을 시키는 택시운전사를 만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어떤 운전사는 우리아빠에 대해 계속 물어보다가 딸이 있어서 좋겠다고 한다. 때로는 신도림까지 가는 도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다. 혹은 대학생이냐고 묻고는 전공이 뭐냐고 공부는 잘하냐고 등록금이 얼마나 비싸냐고 막 그런 것들을 묻는다. 나는 이런 식으로 꼬치꼬치 캐물으며 어떻게든 대화를 진행해 보려는 택시 운전사들한테 짜증이 난다. 대게 택시를 타는 경우는 지각을 하거나 약속에 늦은 긴박한 상황이다. 나는 조급해지고 예민해져 있다. 새치기를 하고 과속을 해서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길 바라는 생각뿐인 나를 붙들고 무슨 얘기가 그토록 하고 싶으신 것인지 나는 피곤해진다.
나는 또 택시를 탄다. 짧은 공강 시간에 명동에 가보겠다고 친구들과 돈을 모아 택시를 탄다. 신나게 돌아다나며 구경하다가 명동에서 4시 수업에 맞춰 간당간당하게 택시를 잡아타서는 동대입구역을 외친다. 수업시작 5분전 3분전하며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택시아저씨는 우리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입하가 언제인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그럼 입춘이 뭔지 아세요?” “봄의 시작이요.” 우리가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 한 대답에 신이 나신 그분은 긴 설교를 늘어놓는다. 운전을 하면서 자꾸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리며 열변을 토하시는 그분의 크신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네에~네에~”하고 웃으며 대답하는 내 친구와 달리, 성격 급한 나는 답답해서 질문을 한다. “그래서 입하가 도대체 언제인데요?” “잠깐만 기다려봐.” 그리고 또 긴 연설이 계속된다. 입하는 어린이날이고, 방송인들도 잘 몰라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거나 대충 얼버무린다는 그런 내용이다. 택시의 전자시계가 04:00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서 강의실을 향해 달리며 체력의 한계를 또다시 경험하면서도 택시아저씨에 대한 뒷 담화는 놓치지 않고 한다.
나는 인터넷 쇼핑을 한다. 편한 옷을 입고,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모니터와 마주보고 앉아서 컴퓨터와 대화하는 것은 편하다. 컴퓨터는 화면으로, 나는 마우스로 나의 의사를 표시한다. 나를 보이지 않은 채 내가 필요한 물건을 구경하고, 정보를 얻고, 남의 사진을 엿본다. 사람이라는 매개체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나는 필요에 의해 마트 혹은 편의점에 간다. 그곳에서 다양한 물건을 만난다.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가 필요한 물건이다. 예쁘게 생긴 오이를,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파리 실핀을, 내 마음에 드는 샤프를, 실용적인 다이어리를 고른다. 내가 선택한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사람을 만나 비용을 지불한다. 우리의 관심사는 정확한 돈 계산이다. 서로에 대해 그 이상의 관심이나 교류가 생기면 피곤해지고 속이 거북해진다. 물건을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먼저 다가가는 경우도 있지만, 피상적이고 가식적인 약간의 친절일 뿐이다.
나는 택시를 탄다. 나에게 택시운전사는 내가 목적지까지 가기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나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고, 상대의 생각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최대한 빨리 목적만 달성해 주면 된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졌어도 아직 택시운전사들은 목적지만큼 손님이라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어쩌면 하루 종일 혼자 택시를 타야하는 무료함과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이기심에서 나온 태도일지도 모른다. 함께 돈을 계산하고, 형식적인 인사만 하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택시운전사는 심하게 불편한 존재다.
택시를 타는 것과 편의점에 가는 것 모두 나의 필요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 필요를 얻기 위한 매개체로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사람은 나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들에게 나 역시 그날 매출을 올려주는,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스쳐가는 타인일 뿐이다. 개인의 필요와 이익(객체)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주체)보다 우선시 되고 있다. 이렇게 주객전도된 상황 안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현대인의 위태로움을, 소설은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는 편의점을 통해서 보다 쉽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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