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주의 비평 대화주의 비평의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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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7 / 201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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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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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주의 비평은 바로 바흐친이 이룩한 대화중심의 비평이론에 근거한 비평방법이다. 바흐친의 대화주의는 형식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창조적으로 절충하려고 한다. 헤겔식으로 말한다면 바흐친은 형식주의라는 정과 마르크스주의라는 반을 지양하여 대화주의라는 제3의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바흐친은 시어와 일상어는 칼로 물을 베듯이 그렇게 서로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바흐친은 형식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비사회적인 형식주의나 사회적인 마르크시즘을 동시에 극복하고자 했다면 이는 정충주의이거나 중용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흐친은 상반된 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오히려 이들의 대립을 통합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점이 비평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바흐친의 논리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다성성, 카니발, 이어성 등이 있다. 그 논리의 기저에는 바로 대화주의에 있다. 대화주의야 말로 형식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포용하면서도 문학의 새로운 인식체계를 구축하는 논리가 될 뿐만 아니라 대화주의에 근거하여 다성성, 카니발, 이어성 등이 그 정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비종결성
바흐친의 중심적 개념인 비종결성은 고정 불변한 상태로 남아있고자 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인간과 자아에 대한 모든 정의를 초월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즉,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그들의 본질은 바로 영원불변한 본질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비종결성은 전혀 변화가 없는 반복이거나 발전이 없는 정체가 아니다. 심리학, 언술, 문학 그리고 시간에 관한 바흐친의 모든 이론은 단순한 변화 대신에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연구 대상의 필수적인 특징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형식주의나 구조주의는 체계의 개념이다. 체계란 종결성을 의미한다. 형식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체계와 전체만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하여 개인적이고 일상적이고 창조적인 자유를 유보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흐친은 총체적인 면에서나 화자의 정신에서나 언어는 체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집단의 경우나 개인의 경우나 언어는 항상 끊임없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서로 다른 다양한 언어들, 즉, 바흐친이 말하는 이른바 이어성의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들은 언어가 항상 이해되는 데 충분히 필요한 일관성, 그리고 항상 놀라움을 가져다주는데 충분한 모순을 내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맥락과 상호텍스트
바흐친이 대화주의는 문학에 있어 무엇보다도 맥락을 중시하는 이유가 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의미는 어디까지나 발화의 맥락에 따라 결정된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발화의 맥락을 떠나서는 어떠한 의미도 있을 수 없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맥락에는 그 이전에 쓰여진 텍스트는 물론 동시대의 텍스트를 두루 포함하며 심지어 아직 쓰여지지 않은 미래의 텍스트까지도 들어간다. 바흐친은 이점에 대하여 훌륭한 작품들은 먼 미래에도 끊임없이 생명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요즘 들어 문학연구가나 이론가 사이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상호텍스트성의 개념이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적 성격을 지니는 것은 비단 문학 창작에만 그치지 않는다. 문학 비평도 얼마든지 상호텍스트적인 성격을 지닌다. 어느 한 문학비평이나 이론은 다른 비평이나 이론과 상호배타적이고 상호대립적인 관계보다는 오히려 상호보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바흐친의 이론을 비평이론으로 발전시킨 대화주의 비평은 무엇보다도 다원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대화주의 비평가들은 자신의 비평이나 이론이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여러 비평이나 이론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2)바흐친의 생애
-생애와 다원주의
바흐친은 1895년 러시아 로렐에서 태어났다. 이 곳에서의 경험은 바흐친의 언어와 문화이론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1918년 시골의 소도시인 네벨로 이주했고 1920년 전위예술의 중심지인 비페브스크로 갔다. 그는 여기에서 많은 영향을 준 시인이며 학자인 이바노프를 탐독했다.1929년 카자흐로 간 이후 농장 회계에 관한 짧은 글 이외에는 아무것도 출판하지 못했다.
1975년 죽기까지 만년의 바흐친은 사탈린 시대의 악몽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지식인으로서 젊은이들 사이에 존경받는 사회적 명사가 되었다.
-바흐친의 저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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