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움의 고대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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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기원전 4세기. 보다 작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공격적인 친 로마 제국은 라티움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들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로마인들은 전쟁에 이기는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으며 후속작업에 더 중요성을 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도로를 건설하고 토지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면밀한 조사를 했으며 정복지의 시민들이 로마식 생활방식에 융합될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이었다. 오늘 떠나는 고고학 여행에서는 그간 발굴된 신비로운 유물들을 한데 모아서 이천 년 전 라티움의 도시와 시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한다.
기원전 3세기와 4세기 사이, 이탈리아 전역에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었다. 오늘날에 아브루찌 이몰리제 인근에 살던 삼윤족을 비롯한 이탈리아 중부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었고, 로마 주변에 옴브리아족, 북쪽에 에트루리아족과 남부 라티움에 헤르니카족과 볼샨족들이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소수민족들은 로마인들을 벼락부자로 간주했다. 자신들의 민족적 주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로마인들의 공격에 호전적으로 맞섰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던 부와 자유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소수 정착민들을 공격하고 식민지화하는 것만이 그들의 국경을 넓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침입자들의 공격에 대비해 각 도시에서는 거대한 방어벽을 세워두고 있었다. 고대 성벽으로 유명해진 도시의 하나는 헤르니카 족 고대 성벽 도시 페렌티늄에 살고 있던 부족
이 살고 있던 페렌티늄이었다. 당시 문명의 하나였던 그 성벽들은 오늘날 중세 마을의 전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성벽들은 아주 튼튼하게 보였지만 로마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로마는 한 도시를 점령하면 일단 토지를 몰수하고 시민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만들었다. 정착민들은 제국의 새로운 국경을 형성하는 성채에 살게 되었다. 당시의 구획작업과 재배치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당시에도 토지를 구획하고 용도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측량을 하는 전문적인 토지 측량가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남자는 당시의 전형적인 토지 측량가이다. 그가 사용하는 도구는 그로마 고대 로마의 토지 측량 도구
라 불렸는데, 자가 측량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연추라고 할 수 있다. 측량가는 그로마를 사용해서 땅에 완벽하게 곧은 수직선을 그릴 수 있었고, 측면 600m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100뙈기 뙈기- 논밭의 구획
의 토지 구획선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로마 즉, 두 개의 연추선을 나란히 놓고 지평선에 맞추어 방향을 설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측량가가 지형이나 방위의 배치도에 입각해 가장 좋은 측량지점을 결정하면 농업용지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을 먼저 결정했다. 선을 그린 지역에는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세우거나 혹은 농업용지로 남겨두었다. 그런 다음 그 거류지에 두 번째 주축선을 기본선에 수직으로 그리게 된다. 각 개별구역은 이 직각의 계획도를 기본으로 기능이 정해졌다. 구획작업이 모두 끝나면 정착민들이 각 토지를 소유하게 된다.
이 고대도시의 발견은 성당의 고대 폐허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성벽에서 고고학자들은 주피터 신전 원래는 천공(天空)의 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한다. 기상 현상을 지배하는 신이며, 집정관이 취임하면 우선 이 신전에 참배하였다.
의 토대석이 이 지점에 세워져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폐허에 성당이 지어진 것이다. 이곳은 도시계획 당시 수 천 년 동안 숭배의 자리로 헌사된 알라트리라는 이름의 아크로폴리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아고라와 함께 중심시의 중요부를 구성하였던 얕은 언덕. 폴리스의 수호신을 비롯한 신들의 신전이 건설되었으며 긴급할 때 피난처와 요새로서의 역할도 갖고 있었다.
, 혹은 도시의 최고기관으로서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이상적인 자리라 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열 네 줄의 벽돌로 한 지점에 쌓아올려진 육중한 경계성벽으로 둘러싸여있다. 그 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두 개의 문을 사용했는데, 약간 더 작은 주출입구는 포스테롤라라고 불렀다. 정문은 넓고 쾌적한 반면 포스테롤라에 조각된 것들은 의문을 자아냈다. 바로 세 개의 남근상이다. 이 대담한 형상 뒤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이 상징물은 로마의 이교도 시절엔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었는데 실제로 다산과 행복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각 표식들을 연구한 고고학자들은 로마인들이 이러한 것들로 사악한 영혼과 불길한 징조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뒷문을 통해 들어가면 강인하고 부유하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당시 돈이 되는 사업이었던 노예거래를 의미할 수도 있다. 수 천 명의 노예들이 붙잡혀 죄수로 돌변했고, 로마제국을 넓히기 위한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원한다면 이 외곽 지역에서 로마에서보다 값이 두 배나 높은 가장 강인한 노예를 고를 수도 있었다.
라티움의 세니의 고고학자들은 로마인들이 남긴 가장 뛰어난 유적지 입구인 사라센 게이트에서 이상한 구멍들을 발견했다. 2m 길이의 암석 기둥으로 된 문틀도 있었다. 이 구멍의 위치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것들이 고대 갑문 고대 성벽을 방어하던 문
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마인들이 기원전 5세기에 기초를 닦은 도시의 성문은 적의 공격을 받을 때는 굳게 닫히거나 수비가 강화되었다. 성문에 사라센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중세에 이 지역을 약탈하던 흉악한 해적들의 공격이 있은 후였을 것이다. 성문은 도시 전체를 감싸는 4.8㎞에 달하는 성벽의 일부였지만,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정복하기 위해 통과한 것도 바로 이 문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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