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로맨틱 코메디는 가능한가, [비포 선셋Before Sunset](2004) 장르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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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로맨틱 코메디는 가능한가, <비포 선셋Before Sunset>(2004) 장르적 분석
1. 로맨틱 코메디란 무엇인가
로맨틱 코메디는 두 남녀를 중심으로 하는 이상화된 사랑을 주 소재로 하고, 멜로드라마와 달리 유쾌한 감성을 바탕으로 즐겁게 사랑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르라 할 수 있다. 할리우드가 액션 영화만큼 쏟아내는 주력 장르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유행 중인 스크루볼 코미디가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위트있는 대사와 극적 갈등을 결합시켜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에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신분/계급 차가 나는 남녀 주인공을 중심으로 계급사회에 대한 풍자 등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며, 결말에서는 사회적 모순을 사랑 혹은 결혼으로 봉합한다는 점은 로맨틱 코메디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두 남녀라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체제적 편견을 뛰어넘어 사랑을 통해 비판적 융합을 이루어내는 것은 로맨틱 코메디만이 가진 정치적인 이상주의를 잘 보여주는 부분일 수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실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처음부터 포기하고 눈가리고 아웅하기식으로 무마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맨틱 코메디의 주 테마가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기존 사회체제에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만나는 유일한 장이자 가난한 여성이 신분상승을 이루는 유일한 기회라는 측면에서 비현실적으로 이상화된 담론을 형성하기에 오늘날 여성주의의 틀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이러한 테마조차 패러디의 대상으로 바뀌며 다양한 변주를 가져오고 있으며,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것과 시대에 관계없이 변화하지 않는 것의 다양한 층위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장르이기도 하다.
형식적으로 보면 느와르나 호러 등의 피튀기는 장르들에 비하면 얌전하고 할 정도로 특별한 도전정신이 없다고 평가받기도 하는 것이 로맨틱코메디이다. 이는 할리우드의 로맨틱코메디가 가져온 전형적인 관습이기도 한데, 카메라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환영주의적인 기법을 통해 프레임 밖의 세계를 잊고 프레임 속의 어여쁜 사랑 얘기에 귀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이는 로맨틱코메디가 갖는 마술과도 같은 효과인 동시에, 실제로 가부장제 체제 하에서 남녀간의 사랑이 갖는 배타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다만 소극적으로나마 로맨틱 코메디는 앞서 태어난 그들의 전철을 똑같이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대 결혼담 일색의 한국 로맨틱 코메디를 30대의 성장담으로 엮어낼 가능성을 보여준 <싱글즈>에서는 로맨틱 코메디의 전형적인 카메라워크를 패러디하며 주인공이 직접 "(이럴 때 드라마에서 보면) 카메라 빙빙 돌고"와 같이 모태가 되는 로맨틱코메디의 전형적인 촬영기법을 비꼬는 대사를 내뱉기도 한다(물론 그대로 따라하기도 한다). 또 영국 태생의 워킹타이틀이 만든 인기작 중 하나인 <노팅힐>은 신데렐라의 서사를 뒤집어 평범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계절이 바뀌며 사람들의 인생이 진행되는 모습을 남자주인공이 노팅힐 거리를 걷는 씬 속에서 원숏원컷으로 처리하는 등의 독특한 실험을 단행하여 눈에 띄지는 않지만 보석같은 장면을 이끌어낸다. 가장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을 포착한다는 점이 사랑과 로맨틱 코메디가 가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맨틱 코메디는 언제나 젊은 여성(20대)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단골 장르였고 그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2. 로맨틱 코메디로서의 <비포선셋>
<비포 선셋>이 만들어지기 전 <비포 선라이즈>도 그러한 영화 중 하나였다. 유럽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하룻밤의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기본 줄거리는 그 시작에서부터 이미 로맨틱 코메디의 한계가 뻔한 이야기일 수 있었다. 그러나 몸으로 치고 받아가며 오해와 이해를 거듭하는 스크루볼 코메디 대신 감독인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택한 것은 러닝 타임 내내 가장 로맨틱하면서 가장 신선한 수다들로 영화를 채우는 특이한 로맨틱 코메디였다. 당시 지적이면서도 성적으로 개방된 여자주인공과 야심없고 순종적인(?) 남자주인공은 혁신적인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들을 데리고 여행지와 같은 아름다운 장소에서 사랑을 키워나가고, 옛 사랑에 대해 질문하고, 마지막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이야기는 그 신선함을 다소 무너뜨리는 감이 있다.
<비포 선라이즈>처럼 <비포 선셋>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자주 가는 게시판의 어떤 이는 ‘카바레에서 만난 아저씨 아줌마들처럼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과 실패의 연속인 연애 이야기로 속보이게 상대를 유혹한다. (중략) 줄리 델피의 집에 갔고, 비행기는 놓쳤다. 그 다음은 뻔하다’는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은 많은 로맨틱 코메디들이 받는 비판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로맨틱 코메디로서의 <비포 선셋>에 설정 자체가 갖는 진부함을 불평하는 것은 장르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그것을 엮어가는 방식이 어떻게 관객의 동의를 구하고 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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