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서 본 폭력의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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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를 통해 본 폭력의 정당성 - 킬링필드 영화 감상문
캄보디아에서의 민주캄푸치아정권 시기의 학살을 다룬 영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 1984)를 보다보니 한때 6.25전쟁을 다룬 우리나라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와 많이 닮았음을 느꼈다. 두 영화 모두 전쟁터라는 공간에서의 형제나라간의 싸움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으며 그 이면에 있는‘극단적인 전쟁의 광기’를 표현하였다는 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폭력의 정당성’을 읽어내려 했지만 <킬링필드>의 그 어떤 곳에도 폭력에 대해 자비나 정당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전쟁은 결코 장엄한 서사시나 위대한 영웅이 아니다.’는 표현이 있다. 전쟁은 민초들의 눈물과 고통, 아이와 여자들의 희생과 피를 남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민주주의의 수호’나 ‘자유와 평화를 위해’라는 등의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존재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이용해 교묘히 이익을 챙기는 정치세력들이다.
크놈펜 정부군이나 크메르 루주군 양쪽 모두 고문으로 군사정보를 캐내려는 포로 말고는 대부분 즉결 처형으로 죽였다. 크메르 루주군이 프놈펜을 접수하자 캄보디아인들은 ‘이제야 평화가 뿌리 내리는가’하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긴장과 공포, 그리고 죽음의 출발점이었다. 영화 내내 보이던 크메르 주군의 검은 옷과 붉고 흰 체크무늬의 수건은 이념의 어떠한 형태보다도 강렬한 ‘상징’이었다. 그들은 200만 프놈펜 시민을 그들이 살던 도시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마치 1915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터키 군대가 100만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인종청소로 죽이면서 추방하던 모습 같았다.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은 이상적인 공산사회를 세우겠다며 공포정치를 펼쳤다. “캄보디아의 시계는 서기 0년으로 돌아갔다.”, “캄보디아가 ‘블랙홀’에 빠졌다.”라는 표현도 이 시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김재명, 2006).
킬링필드의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킬링필드의 본격적인 시작은 19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부터 예고되었다고 한다. 1987년 12월 25일 저녁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이며 캄보디아와의 국경 인근인 반메뚜옷에서의 총성을 신호로 통일 베트남의 10만 대군은 국경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라오스 주둔군으로 라오스에서 국경을 넘었다. 1979년 1월 4일 메콩강 동안을 완전히 장악한 베트남군은 1월 6일 프놈펜으로 진격해 8일에는 프놈펜을 점령했다. 이른바 ‘형제간의 전쟁’은 이렇듯 전광석화로 시작되어 이후 1988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유재현. 2003).
잔인했던 킬링필드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1989년 베트남군의 철수와 1991년의 파리 평화협정, 쿠데타로 이어지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크메르 루주는 소멸했고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3국 중 가장 처음으로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제는 아무도 킬링필드에 대해서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서구의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이 전쟁이 계륵과도 같았다(유재현. 2003)고 한다. 베트남에 대해 비난을 할 수도, 그렇다고 형제국을 침략한 베트남을 지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선택은 침묵이었다. 소련과 동구권은 베트남을 지지했고, 중국은 베트남을 반대 하는 등 공산주의 블록의 선택은 분열되었다. 북한은 비난의 일성은 내놓았으나 이후 침묵을 지켰다. 좌파가 베트남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처해있는 동안 우파는 마음껏 민주캄푸지아를 마구 난도질하기 시작했고 그 핵심은 바로‘학살’이었다.
캄보디아에서의 킬링필드는 급속하게 서방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다. 세계의 여론은 베트남의 침략에 대한 온정적 태도로 강화되었고, 곧이어 베트남은 국제무대에서 입지를 확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정치외교무대에서는 베트남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엔 또한 미국과 유럽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의 대중적 여론은 캄보디아의 전 정권에 대해서 극도로 신랄했으며 덕분에 베트남에 대한 압력과 공세는 현저하게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서방의 반공주의의 효과로 베트남은 전쟁 전과 후를 통틀어 추진했던 국제적 프로파간다 중 유례없는 성과를 거두었다(유재현. 2003)고 표현된다. 즉 캄보디아를 통해 공산주의의 야만성과 폭력성, 비인간성을 보여준 <킬링필드>는 더없이 훌륭한 반공영화였고, 베트남은 세계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반공 선전의 이미지와 상징하나를 각인시켜 주었다. 절대선이라고 여겼던 이념에 반하는 것 즉,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좋은 구실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킬링필드>에서 폭력의 정당성을 찾는 문제는 전쟁의 정당성을 찾는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폭력성을 발현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집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는 오래 전부터 수없이 논의되었던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인간은 언어적 능력을 통해서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시간적 개념을 인지하고 기술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개념과 스스로의 가치판단을 통해 찰나적 만족과 소유욕으로 끝나지 않는, 동물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욕망을 갖고 있다. 이런 무한한 욕망으로 인하여 인간사회는 폭력성과 전쟁, 공포와 불신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전쟁은 ‘한 나라의 국가 정책을 무력으로 다른 나라에 관철시키려는 수단’으로 정치적 이념과 이해를 달리하는 무장집단끼리의 적대적 행위이다. 서로 다른 국가·민족 간에 외교적인 수단으로 갈등을 풀 수 없게 되면,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 하게 된다. 1978년에 영국의 정치학자 안토니 샘슨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78년에 이르는 33년 동안 지구촌 사함들이 어느 곳에서건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날은 겨우 26일 뿐이다’(김재명. 2006)라고 할 만큼 인간의 심성 한 구석에는 폭력성이 꿈틀댄다. 이 사악한 열정은 정치지도자들의 논리에 따라 ‘애국’ 또는 ‘애족’이란 이름으로 강제력을 행사하고 전쟁을 합리화하여 왔다. 그렇다면 과연 전쟁과 같은 특수하고 극한 상황이 전제된다면 인간의 폭력이 합리화 될 수 있는지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강제력이 폭력은 아니라면, 당하는 자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강제력의 행사를 위해 명분을 제시하고 주변의 동의를 얻는 방법을 통해 그 강제력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폭력의 범주를 국가에 의한 폭력(국가폭력)과 국가의 폭력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폭력(저항폭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국가폭력의 이론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들고 있다. 첫 번째 이론으로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다양성이 커짐에 따라 현대 국가는 통합의 위기를 맞고 있는데, 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론은 현대 국가의 엘리트층들이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특권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홍성흡. 2005)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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