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별(2012) -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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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별(2012) - 이승준
다큐멘터리 양식을 크게 5가지로 분류하는데 요약하자면 구두해설과 논쟁적 논리를 강조하는, 방송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해설양식, 감독의 개입 없이 대상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관찰양식, 감독과 대상간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인터뷰등을 활용하는 참여양식, 영화의 현실재현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성찰양식, 주관적이거나 표현적인 것으로 정서적인 것을 선호하는 수행양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는 이 양식들 중에서 관찰양식에 대해 분석을 해보고자 했다. 페이스,모큐멘터리를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의미는 ‘대상을 관찰함’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을 관찰양식의 다큐멘터리로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보이지 않는 눈과 들리지 않는 귀를 가진 영찬과 척추장애로 남들보다 작은 몸집을 가진 순호가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랑이야기이다. 감독이 ‘그들이 살고 있는 별을 잠시 여행할 수 있었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라고 말했듯이 이 다큐는 아마도 달팽이처럼 오직 촉각에만 의지해 느린 삶을 사는 영찬과 순호가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초반에 영화를 보면 시간 경과에 따른 인서트들의 삽입이나 일반인들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 방송에서 보여주는 인간극장, 다큐3일등과 다를 바 없다고 느낄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달팽이의 별’ 다큐멘터리를 통해 방송다큐와 관찰다큐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해설과 인터뷰가 없다는 것이다. 감독에 의해 주입되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영찬과 순호를 바라본다. 그들은 늘상 그들이 하던 데로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그들의 일상을 살아가는데 우리는 그러한 일상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발견하게 된다. 종종 등장인물들은 감독이 있다는 사실에서 관심을 거두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런 장면들은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개성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그러한 장면이 나타나는데 영찬이 점토로 만드는 다양한 장식품들에서 그의 재치가 엿보이며, 순호가 컴퓨터로 글을 쓰고 영찬이 전자단말기를 통해 그 글을 다시 한 번 읽는 장면에서는 순호의 오타를 잡아내는 섬세함까지 가지고 있다. 순호는 언제나 영찬의 눈과 귀가 되어 홀로 학교에 간 영찬이 걱정 되 선생님께 연락까지 하는 그녀는 참 지고지순하다. 영화에서 어떠한 설명도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성격을 짐작한다.
또한 연을 날리는 장면에서 순호가 영찬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는데 초점 없는 영찬의 눈을 보며 시각장애임을 알게 되고, 영화 타이틀이 뜨고 밥을 먹는 장면에서 영찬의 손마디에 점자를 찍어 음식의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청각장애도 있음을 알게 된다. 함께 공부하는 장애인 친구들이 집에 방문했을 때 친구를 통해 백년가약을 맺은 영찬과 순호의 러브스토리를 듣게 되기도 하며, 짧지만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장애인이기에 받았던 상처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관찰하거나 듣게 된 행동에 기초하여 추론하고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곧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말과 행동의 의미를 결정하는 데 있어 관객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요구된다는 점이고, 이러한 점이 관찰양식에 있어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영화가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 안에서 관객 자신이 주워 담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재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관찰자적 영화는 실제 사건이 지속되는 시간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 특별한 힘을 가진다. 인물의 몸짓이나 마주치는 눈빛, 목소리의 톤이나 억양, 중간 중간 말을 끊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텅 빈’ 시간 등을 통해 구체적이고 생생한 리얼리티와 만나는 느낌을 준다. 이 영화에서는 영찬과 순호가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손 끝에 닿는 빗방울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영찬이 점자단말기를 손으로 읽어 내려갈 때, 순호가 영찬의 손에 점자를 쓸 때, 나무에 안긴 영찬의 모습등에서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그 어떤 일련의 기법들이나 영화적인 장치들보다도 관객에게 잘 전달되어 온다. 이는 관찰다큐가 가지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하게 흘러가는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 것은 달팽이와도 같은 그들을 담아내기에 무엇보다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장점들에 비해 관찰다큐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적지 않은데 나는 이쯤에서 관찰다큐에 대해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그것은 타인의 생활을 관찰하는 행위와 관련된 일련의 윤리적인 고려사항이다. 픽션영화의 장면은 전체적으로 의도치 않게 보고 듣게 되도록 고안되는 반면에, 다큐멘터리의 장면은 실제 사람들의 산경험을 우리가 목격하게끔 보여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관음적인 시선인가에 대한 물음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감독의 간접적인 개입의 문제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카메라가 그곳에 없었을 경우의 상황과 얼마나 같을 것이며, 만일 감독의 존재가 보다 쉽게 인지되는 경우와는 또 얼마나 다른 것인가. 이러한 논쟁은 관찰자적 영화에 대한 신비감과 불안감을 지속시키며 끊임없는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관찰다큐멘터리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달팽이의 별’을 선택했지만 이 영화에는 분명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인물들을 관찰하는 다큐일 경우 오랜 시간 촬영을 통해 얻게 되는 소스들이 상당할 것이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감독의 개입은 불가피하지만 무엇보다 ‘달팽이의 별’에서는 영찬과 순호의 이야기가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편집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함께 살면서 겪는 불편함이나 혹은 그러한 과정들, 영화로 예를 들자면 형광등 갈아끼우기나 영찬을 돌보는 순호가 병원 진찰을 받는 일, 영찬의 홀로 걷기 등 일상생활 속에 묻어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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