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덴 형제 -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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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
< 다르덴 형제 >
이번 중간 과제물을 준비하면서 나는 어떤 주제와 감독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나 또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왔다. 우선 추상적으로 아무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비교하기엔 너무 방대한 범위이고, 나는 이번 3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수업을 듣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 중 다큐멘터리성향이 있고 그와 비슷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처음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좋아하는 감독들 작품 위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중 내가 선택한 감독은 너무 나도 유명한 다르덴 형제의 영화 중 초기작인 `아들` 이라는 영화를 선택했다. 모두 다 알다시피 다르덴 영화는 롱테이크. 헨드핼드,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갈등과 열린 결말을 관객들에게 남겨둔다. 다르덴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들었다. 리얼리즘 개념에 갇히지 않는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대단한 감독이다.
형 장 피에르 다르덴과 동생 장 뤽 다르덴은 1970년대 초 극작가 아르망 가티의 문하에서 연극을 배우고, 연기를 배우고, 비디오 매체의 유용성을 배웠다. 고향인 세렝으로 돌아온 형제는 시멘트 공장과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해 마련한 돈으로 장비를 구입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중요한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택단지, 파업현장, 공장들을 돌며 카메라로 그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 의무라고만 생각했다. 이후 수십 편이 넘는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1975년에 설립한 다큐멘터리 제작사는 그 영역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의외로 장대한 기록의 역사를 부추긴 처음 동기는 아주 소박하고 명료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잘 모른다. 어느 누구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의 초상을 보여주고, 어느 일요일 날 차고나 카페에서 그 작품들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의 어떤 결속력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도 이들 영화의 경향을 두고 ‘사회적 행동주의라고 규정하는 관점은 그 공동체적 수행력을 중요시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인터뷰에서 다르덴 형제는 사회적 행동주의 영화를 고수하느냐는 질문에 도리어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그런데 당신이 사회적 행동주의라고 말할 때의 그 의미는 뭔가요?” 이들의 사회적 행동주의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관심과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개념에 갇히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벨기에 동부 리에주, 직업을 잃은 노동력 20%가 빠져나가 철강 산업도시로서의 명성을 이미 과거에 넘겨주고 죽어버린 그런 도시. 그곳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세렝. 다르덴 형제는 “닫힌 그 공간의 종류를 재창조해야 한다.고 의지를 밝힌다. 그래서 극영화 <로제타>와 <아들> 역시 여기를 무대로 촬영한 것이다. 이 인터뷰에 대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다르덴 형제는 벨기에의 사회문제를 극영화에 담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실제 인물을 따라가듯이 찍고, 형식은 롱테이크가 많다. 다큐멘터리와 많이 흡사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어느 장소나 인물을 따라다니면서 그 피사체에 대한 탐구와 생각을 보여주고 , 흔히 내레이션과 설명, 자막이 기본적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다르덴 형제 영화에서는 자막이나 나레이션, 그리고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평소에 공부하는 극영화의 플롯 그대로 따라 만든 영화이다. 특히,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갈등이 주로 모든 영화에 나타나는데, 나는 이런 갈등을 영화에서 보는게 좋다. 물론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이렇게 깊은 사회적 문제를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됨으로써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르덴 형제 영화를 보면서 씨네 21이라는 전문가들의 기사를 모든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다르덴 형제는 “우리는 한 사람이지만, 눈은 네 개”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두명이 공동연출을 할 때 상상 가능한 생산적인 분담 방식의 한 예를 드는 것으로 이 표현은 더 잘 설명된다. 주로 촬영과 편집을 맡는 장 피에르 다르덴과 사운드 쪽을 맡는 장 뤽 다르덴은 촬영장에서는 한 사람은 모니터를 보고, 또 한 사람은 배우를 본다. 모니터 뒤에 있는 사람은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자리를 바꾼다. 역시 모니터 뒤에 있는 사람은 침묵한다. 둘 사이의 의사소통은 필요 없다고 한다. 말하지 않아도 의중을 이해한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다르덴 형제의 독특한 연출방식의 예가 되는 것은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배우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육체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업은 먼저 카메라맨 없이 시작되어, 많은 리허설로 동선을 구성해보고, 또 몇 가지 버전으로 바꿔본다. 이때는 대사에 대한 부담도 주지 않는다. 수차례 반복한 뒤 카메라는 돌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연습한 걸 정확하게 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우의 움직임과 디테일들이 살아난다. 그때에 가서야 대사를 시작하고 조정해나간다. 다르덴 형제는 배우가 육체로 말을 건네기를 원한다. 카메라는 그 살아 있는 ‘물질성’을 담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 식의 ‘리얼리즘’이며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넘어오면서 발전되는 그들만의 요소이다.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다르덴 형제는 이 세편의 영화에서 꾸준히 같은 틀을 사용한다. 시종일관 음악은 배제된다. 점프 컷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인물들의 대사도 많지 않다. 대신 한 발짝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핸드헬드’로 쫓아가는 카메라는 금방이라도 곧 찢어질 것 같은 포커스 아웃과 흔들림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현실과 부딪쳐야 한다. 있는 사실을 조작하거나 움직이는 일은 안 될 말이다. 극영화에선 그걸 변형하는 일이 가능하다”라고 그 차이를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큐멘터리의 그 측면을 극영화에도 반영하려고 애쓴다. 우리에게 굴하지 않는 뭔가를 찍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보여주거나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다루기 쉽지 않은 ‘저항감’이 우리가 찍고 있는 대상에 진실과 생명을 부여해주는 것이다”라고 그 연계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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