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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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 번쨰 내용에서 다루는 것은 낭만주의에 관한 내용으로 앞서 2차메모 때도 그러했지만, 이번 3차메모 또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주제였던 듯 싶다. 이번 낭만주의에 대한 내용에서 또한 문학과 음악분야는 배제하고 회화적인 부분에서 접근을 하고자 한다.
낭만주의의 회화적인 측면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낭만주의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데, 쉽게 말해 낭만주의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전 유럽에 탄생한 예술적 경향이다. 개성을 존중하고 자아의 해방을 주장하며 상상과 무한적인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감정적인 태도가 그 특징이다. 미술상으로는 고전주의, 바로크에 대해서도 이 경향은 언급되지만, 일정하고도 명확한 양식을 낳은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의 주요 특징은 형식보다 자유로운 내면 세계의 표출이었다는 점, 현실을 초월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했다는 점, 그리고 이성이 지배하는 공간을 부정하고 공상과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는 세계를 존중했다는 점이다. 고전주의의 차가운 형식 존중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프랑스 낭만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들라크르와의 경쟁자이자 다비드의 뒤를 이은 고전주의자 앵그로에게서 일찌감치 그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 제리코를 거쳐 들라크로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자유분방한 색채, 유동적인 필치, 힘 있는 동세에 찬 구성 등 기법 면에서도 주목을 끌었다. 특히 들라크르와의 이국적 취향이 만들어 낸 작품들은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특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낭만주의의 표현기법은 선명한 색채와 강한 움직임, 그리고 이성보다는 인간의 감성적인 측면에 호소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낭만주의 회화의 감상하려면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그림이 아니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계몽주의가 근대 시민사회에서 개체의 해방을 간취하고 그것을 환호하였던데 반하여, 낭만주의는 근대 시민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소외와 분열의 문제를 자각하고, 이것을 극복하려 했다. 물론 낭만주의가 근대사회의 자유의 이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낭만주의는 자유의 이념을 긍정하면서도 소외와 분열을 넘어서 조화와 통일이 가능한 진정한 보편성의 원리를 찾으려 했다. 헤겔 역시 이런 점에서 낭만주의의 이념에 공감하며, 이를 ‘실체적 삶’에 대한 시대적 요청으로 파악했다. 낭만주의는 조화와 통일의 원리를 확보하기 위해 무제약적인 절대자를 인식하려 했다. 낭만주의는 직접지나 지적 직관을 통하여 절대자를 포착하려 했다. 낭만주의에 의해 포착된 절대자는 ‘다양성의 통일’ 속에서 끊임없이 생산적으로 전진해 나가는 운동이었다. 이 같은 절대자의 개념이 자연의 원리이며 동시에 사회의 원리로 되면서, 이를 원리로 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낭만주의는 총체적인 교환관계가 지배하는 근대 시민사회에서 경직되고 억압된 주체의 해방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았다. 낭만주의에서 이것은 미적인 원리에 의해 가능하다. 세계에 대한 낭만화, 그리고 이로니의 개념을 통해서 낭만주의는 자아의 해방과 순수 주관성의 절대적 자유를 확립하고자 했다.
2차메모를 쓸 떄도 느꼈지만, 하우저의 예술관, 그리고 주요 작가들에 대한 접근 방식은 상당히 건조하다.
다비드는 자기 시대의 예술정책에서 유례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모든 예술적 문제들에 관한 혁명정부의 상담역이자 대변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예술적 혁명의 장본인이요 근대미술이 어느 의미에서는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다비드 혁명’의 창시자인 것이다. 그는 또한 그 명성과 규모 및 지속성에 있어 미술사상 거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유파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실로 전 유럽적 고전주의 유파가 되었고, 미술계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린 창시자 다비드는 자기 분야에서는 세계정복자에 비견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들라크르와는 다비드를 ‘전 근대 미술유파의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다비드는 이러한 그림들과 함께 18세기와 로꼬꼬의 전통에서 점점 더 멀어져갔고 초기작품들의 천재적 개인주의와는 정반대되는 매우 객관적인 양식을 창조 하였는데..... 다비드의 경우는 예술사회학적으로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는데, 그 까닭은 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수한 예술적 질이 실제적인 정치적 목적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테제가 더할 나위 없이 명백히 반증되는 예를 미술사에서 두 번 다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은 예술적으로 별로 큰 성과가 없었다거나, 혁명시대의 작품은 로꼬꼬 고전주의의 계승 내지 완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양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흔히 주장되어왔다. 그리고 혁명기간의 예술은 단지 내용과 이념에서만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그 형식과 양식적 수단에서는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도 강조되어왔다. 혁명이 일어났을 때 실제로 고전주의가 어느 정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혁명은 이러한 기존의 고전주의에 새로운 내용과 의미를 부여하였다. 혁명은 고전주의가 비독창적이고 비창조적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사물을 평준화해서 보게 마련인 후세 사람들의 시각 때문이고, 당대의 사람들은 다비드의 고전주의와 그의 선행자들의 고전주의 사이의 양식적 차이를 완전히 의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우저는 모든 장의 형식이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개괄하고 구체적인 문학과 예술 사조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일련의 사회적 성격이 모든 문학과 예술 작품 안에 융해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다비드에 대한 하우저의 입장은 그다지 비판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우저가 기존의 다른 예술관이나 주요 작가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것에 비하면 다비드의 능력과 예술성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비드의 그림중 나폴레옹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영웅주의 또는 이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점에서 다비드는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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