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작 원령 공주 1997 미야자키 하야오 원령 공주 감상평 원령 공주 영화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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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작 원령 공주, 1997_미야자키 하야오
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을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생각하여 그의 작품들 중 그의 사상이나 내면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되는 <원령 공주>를 이번 발표 작품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령 공주>뿐만 아니라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작가입니다. <원령 공주>는 1997년에 나온 작품으로서 상영 당시 일본 내에서 종전 최고 흥행 수익을 올렸던 <ET>를 제치고 가장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원령 공주>는 일본의 전통 신화,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자연주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세계 등 여러 가지 방향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접근은 이미 매체 등을 통해 너무나 많이 다뤄졌는지라 저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최소한으로 하고 대신에 <원령 공주>에서 나타난 몇몇의 특정한 이미지를 통해 일본의 제국주의 회귀, 천황중심 사상, 서구적 가치의 추구와 거기서 빚어지는 일본인들의 상실된 자아를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일본적인 것만 다루겠다.”라고 선언하며 무대를 일본의 고대 신화 속으로 옮겨 놓습니다. 중심 장소가 되는 ‘숲’은 다분히 일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로서, 매우 신비롭고 초월적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동경을 자아내는 장소입니다. 여기서 숲은 단지 옛 것이라는 의미로서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일본에 존재하던 최초의 것으로서, 문명 이전의 시기에 존재하던 우월적인 일본의 전통적 사회를 상징합니다. 한 마디로 일본의 무의식적인 향수와 애모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숲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시가미라 칭해지는 사슴신인데, 이 사슴신은 삶과 죽음을 관장하고 자연의 모든 질서를 부여하는 초월적 존재로 나타납니다. 두 주인공인 산과 아시타카 뿐만 아니라 늑대 일족과 여러 이름난 산들의 신들도 모두 이 사슴 신을 추종하며 충성을 다합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이 충성ㆍ복종 이미지는 한명의 무소불위의 존재가 만물과 만사를 아우르며, 여타의 것들은 희생되는 천황주의, 제국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수많은 고다마들이 고개를 딸깍거리며 거대한 사슴 신 앞에서 일제히 열광하는 장면은 이러한 일본의 정체성과 무의식적 세계를 드러내는 것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위대한 사슴신과 영원한 우월의 장소인 원시의 숲. 그 영광을 향수하는 무의식의 세계 말입니다.
<원령 공주>에서는 애니메이션 치고는 기이하다고 할 만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본래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만화영화로 아이들도 다 볼만큼 건전하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원령 공주>에서는 의외로 잔혹한 장면이 제법 튀어나옵니다. 아시타카가 쏜 화살에 팔이 잘리는 무사나, 목이 잘린 늑대, 이 늑대에 의해 팔이 잘려나가는 에보시, 그리고 역시 목이 잘린 사슴신 등이 그것이지요.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많이 보았지만 <원령 공주>만큼 인간 해부를 많이 시키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절단된 신체의 이미지들이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영화 속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표면적으로 숲은 알 수 없는 고대의 어느 시점으로 되어 있지만, 감독은 1392년부터 1573년까지의 무로마치 시대에 흥미를 느끼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일본인들이 자연을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시기로, 일본인들은 원시림의 거대한 토지를 개간하고 전보다 많은 곳에서 철을 생산합니다. 바로 이때부터 그들은 인간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근대적이고 서구적 세계로 들어가는 초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보시가 이끄는 마을의 주민들이 철을 생산하고 자꾸자꾸 총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적 세계와 서구적 가치가 주는 이점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상실과 단절의 고통을 지나야 하는 것입니다. 곧, 자연 안에서 살았던 그들이 자연 밖으로 나오면서 겪게 되는 상실감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신체의 절단 이미지인 것입니다. 무로마치 시기는 바로 이런 단절과 상실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신체의 절단은 서구 세계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면서 상실된 자아가, 그 외소해진 자기의식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원령 공주>를 통해서 서구에 뒤지지 않는 일류국가를 만들겠다는 일본의 야심과 그 한 편에 파인 일본인들의 자아 상실감의 무의식을 볼 수 있게 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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