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그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조영래 저 독서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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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목차
경제 성장...허나 그것은 노동자의 뜨거운 피와 땀으로 인해 가능했다.
- 전태일이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 그가 살던 시대상황
지독한 가난 그러나 살아야했다.
- 전태일의 어린 시절
바보회
- 전태일의 노동운동
인간을 중요시 하는 그의 사상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게 하지 말라!
- 전태일의 투쟁과 죽음
그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 전태일의 죽음이 사회에 미친 영향
그의 불씨는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 나의 생각
경제 성장...허나 그것은 노동자의 뜨거운 피와 땀으로 인해 가능했다.
전태일이 태어나기 전 그리고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나라의 시대상황은 1960~70년 이승만의 정권의 물러남과 동시에 박정희가 나라의 정권을 잡음으로써 놀라운 경제성장을 보여주었다.
경공업을 중심으로 섬유와 같은 산업을 기초로 하여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그것은 겉만 화려할 뿐 속은 썩을 대로 썩어진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에 적어도 14~15시간씩 일을 하며 일감이 밀리면 그마저도 야근을 해서 수량을 맞춰야했다. 그에 비해 임금은 턱없이 작았다. 기초적인 인권조차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노동자에게 무리한 일을 강행하게 했다.
현 정보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당연히 데모를 하거나 노동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할 것 이다. 허나 이미 이승만 정권 때 좌익(공산주의, 보수파)와 우익(자본주의, 혁진파)로 나누어 노동운동을 하는 자는 좌익 즉 간첩으로 생각되어 잡혀가는 시대였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생각하지도 못하였고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노동자로써는 밥 먹는 시간과 돈을 줄여가면서 더 나아가서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돈을 벌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병에 걸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같은 노동자들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전태일은 아무도 나서지 않고 두려워만 하고 있던 노동운동에 첫 발을 내딛었다.
모두가 그리고 전태일 또한 이 길이 힘들고 기나길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전태일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더 이상 떨어질 것도 없는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받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목숨까지도…
지독한 가난 그러나 살아야했다.
1948년 8월 26일(음력) 경북 대구시 남산동에서 전상수와 이소선의 사이에서 전태일은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전상수씨는 피복제조업 계통의 봉제 노동자였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집에다 미싱 한 대를 차려놓고 자작으로 피복 제품업을 하거나 삯일을 하였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패로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 되었고 집에서는 욕설과 폭력이 버릇이 되었다. 어머니인 이소선은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신자로 자식들을 올바른 삶으로 키우기 위해 엄한 교육을 하였는데 전태일은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당시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가족들은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서울로 올라왔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힘들게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미싱을 하나 마련했고 아버지의 양복 기술이 좋아 안정된 생계를 가지면서 전태일은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실패를 하여 가족들은 거리로 내앉게 되고 아버지는 다시 술을 마시고 가족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맏이로써 여섯 식수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전태일은 삼발이 장사를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갔고 견디기 힘들었던 전태일은 돈을 벌어서 돌아오자는 심정으로 가출을 하게 되었다. 근 1년을 돈을 벌지도 못한 채 만신창이가 되어 가족에게 돌아왔고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반겨주었다.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미싱을 사서 대구에서 일을 하면서 안정된 가정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고 전태일은 다시 학교에 들어가서 배울 수 있었다. 그때에 배움의 즐거움을 느낀 전태일은 학업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잘 살지 않은 가정에게 학업과 대학이라는 것은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학업을 그만 두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강요에 두 번째 가출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 만에 돌아왔을 때엔 아버지의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대로 학업에 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의 폭력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고 어머니는 서울로 식모살이를 하러 떠났고 아버지의 폭력을 견딜 수 밖에 없었던 전태일은 결국 어머니를 찾아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로 어머니를 찾으러 갔고 그곳에서 어머니를 만난 후 다시 정신을 차린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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