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보고서 - 남산 김소월시비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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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사 보 고 서
남산 김소월시비를 다녀와서..
문인생가방문을 남산으로 정한 동기와 여정....
남산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많은 문인생가가 있습니다. 그 많은 문인생가 중에서 남산으로 선택한 이유는 우선 저희가 찾아가기가 쉬웠기 때문에 그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우리나라 사는 사람 중에 남산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남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남산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도보로 갈수도 있고 버스로도 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힘들긴 하지만, 차비도 아끼고 쫌 더 남산의 정취를 즐기기위해 서울역에서 도보로 가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저희 조만 간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에 듣는 다른 조 친구들과 같이 갔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신식건물이 아닌 구식건물에서 찍었습니다. 오랜만에 서울역에 오니 기분이 남달랐습니다.
예전에도 한번 서울역에서 남산까지 걸어가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런 저를 믿고 따라 올라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하철 출구를 잘못 나와 길을 조금 헤맸습니다. 다행이도 힐튼호텔이 보여 다행이도 빨리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산 공원까지 올라가는 길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계단이 나왔기 때문에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팠습니다. 남산공원까지 올라가기 바로 전 계단은 2005년 최고의 인기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의 촬영 장소 였습니다. 남자애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나 여자애들은 그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서 좋아하는거 같았습니다. 남산공원에 도착해서 김소월 시비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도산 안창호선생님의 기념비와 동상이 보이기만 했습니다. 결국 공원 안내지도를 보고 찾았습니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비는 우리를 약간 실망 시켰습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너무 간단하고 허무했습니다. 그래도 보고서를 위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시비에 적혀 있는 시는 산유화였습니다. 저희조 대부분은 진달래꽃이 제일 유명하기 때문에 진달래꽃이 새겨져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였습니다. 시비 앞에 도착했을 때 조금 황당하긴 했으나, 김소월시인에 대해 조사하고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소월시비만 찾아간것이 많이 아쉽고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저희집 근처에 있는 다른 문인의 생가나 시비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문인에 대해 알고 그 문인의 작품도 읽고 싶습니다.
김소월 시인에 대하여.....
1. 시인의 삶
시인. 본관은 공주. 본명은 정식(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성도(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사립인 남산학교 (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 직후 한때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 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오산학교 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이돈화(李敦化)· 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2. 작품활동
시작활동은 1920년 《창조 創造》에 시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 (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 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작품 발표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인데,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년 《개벽》에 실린 〈금잔디〉, 〈첫치마〉,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개여울〉, 〈제비〉, 〈강촌 江村〉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삭주구성 朔州龜城〉, 〈가는 길〉, 〈산 山〉, 《배재》 2호의 〈접동〉, 《신천지 新天地》의 〈왕십리 往十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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