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인간가치 를 읽고 정리 및 요약 과학과 인간가치 줄거리 과학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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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인간가치』를 읽고... 정리 및 요약
『과학과 인간가치』의 저자는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 황폐해진 일본의 모습, 아무것도 없는 폐허의 모습에서 “당신은 누군가? 당신은 내 사랑인가? 라는 음악을 듣고『과학과 인간가치』라고 이름을 붙인 글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목적은 문명의 부분들이 하나의 통일적인 전체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즉 사회에 일관성, 더 나아가 사회에 생명력을 주게 되는 연결고리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아직도 미완 상태로 남아있는 행동규범을 정하는데 관계하는 과학의 위치 및 역할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1. 창조적인 정신
과학 활동의 속성에 대한 연구로서, 창조적인 정신을 구사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상상력의 행위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예술과 과학에서 인간정신의 창조적인 행위는 유사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과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는 과학으로 지칭되는 주요한 내용을 뜻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과학을 즉 실용적이면서 이론적일 수 있는 과학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였다. 과학이란 자연에 숨겨진 잠재력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인간의 지식을 계통적으로 조직화하려는 작업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과학자가 하는 일에는 그 시대의 관심과 과학자 자신의 관심이 얽혀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자의 행동은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다를 바가 없다. 과학자로 하여금 과학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또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게 하는 것, 과학자가 자기의 일에 몰두하는 것은 시인이 자기의 시작에 미술사가 자기의 작품에 몰두하는 것과 같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채색하는 것도 어떤 효용적인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졌음에 틀림이 없고, 언어도 시초가 무엇이든 실제적인 의사소통을 위하여 개발되었다. 그러나 순간순간 언어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되새기지 않고는 또한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탐색하는 의식 없이는, 미술가는 그림을, 언어학자는 언어를, 과학자는 물리학의 상징적인 개념들을 다루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이 인간의 창조적인 행위의 기장 기본적인 근간이 된다.
어떤 과학의 이론도 사실의 집대성은 아니다. 또 개개의 사실이 옳고 그르다는 단순한 의미에서 어떤 이론이 옳고 그르다고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다. 모든 과학은 감추어진 유사성에서 통일성을 찾으려고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구는 만유인력과 전자기학을 연결하려는 시도와 같은 현대 이론의 경우처럼 장대한 규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의 규모 때문에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 만일 충분히 대담하다면 허공에서 아주 미미한 유사성을 잡아채 냄으로써 발견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과학의 발견과 예술의 작품은 감춰진 유사성의 탐색, 아니 차라리 유사성의 폭발이다. 발견자와 예술가는 그 발견과 작품에서 자연의 두 면모를 제시하고 하나로 융합시킨다. 이것은 창조의 행위이며 그 안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태어나고, 그것은 창의적인 과학이나 창의적인 예술에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창의적이라고 해서 시를 쓰거나 과학적 발견을 한 사람의 독점물은 아니다. 오히려 시나 과학적 발견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행위에도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따라서 이것이 또 하나의 창조적인 행위라는 관점은 옳다. 시나 과학적 발견은 창조의 순간과 감상의 순간, 즉 상상력의 두 시점에서 존재한다. 왜냐하면 감상하는 사람은 그 작품이 창조될 때 시작된 감동과 울려 퍼지는 메아리를 느끼고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상의 순간에 창조자가 감춰진 유사성을 간파하고 그것을 붙들어 잡던 순간을 새롭게 살아간다. 작가의 의도에 동감하고 어떤 이론이 신선하면서 동시에 수긍이 갈 때, 이 때 우리는 단순히 고개만 끄떡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창조적인 행위를 재연하는 것이고 또 우리 스스로 발견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2. 진리의 습성
우리는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역사적인 질문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자랑하는 문명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바로 그 날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객관적 사실에 충실함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인으로부터 문명은 큰 힘을 얻어서 발전했다. 경험된 사실을 진리의 얼굴로 하고자 하는 원칙은 심오한 뜻을 가진 주제이며, 이 원칙이 바로 르네상스 이후 우리의 문명을 움직여 온 원동력이다. 물론 우리는 “진리란 무엇인가?” 에 대해 진실인 것과 환상적인 것을 구분하려는 작업에서 시작됐다. 즉 단순히 틀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근거가 미약하거나 무질서한 신념의 경우 그것에 의거한 환각들로부터 진실인 것을 구분해 내는 작업, 이러한 작업은 1890년 윌리엄 제임스가 제창했고 미국에서 가장 독창적인 철학사고로 꼽혀지는 실용주의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 여기서는 사물의 현실을 진리의 모형으로 삼는다. 우리가 어떻게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사물이 있다고 믿게 되는가? 우리는 사물 그 자체 안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사물의 한 모습이나 효과가 우리에게 미치게 된다. 하지만 사물이 그것의 모습들에 질서를 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사물로 인식한다. 즉 우리의 세계에 들어오는 여러 다른 모습들을 사물이 하나로 통일시킨다. 과학에서의 진리란 마치 에베레스트 산, 즉 사실들의 질서와 같다. 우리는 과학적 법칙의 그물망을 만드는 양식으로 우리의 경험을 유기적으로 조직화한다. 진리를 찾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믿음이나 권위나 자명하다는 확신을 통하여 얻어지는 도전할 수 없는 개념을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피에르 아벨라르가 한 말로서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묻게 되고, 물음으로써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된다. 우리는 ‘이것이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세계로 항상 되돌아옴으로써 탐구하고 끊임없이 나아가는데 이것은 중요한 진리의 습관이다.
3. 인간 존엄성의 의미
인간의 행위를 연구하고자 할 때는 유일하게 사회를 묶는 인간의 의무와 동시에 사회가 언제나 인간에게 허용해야하는 개인적으로 행동할 자유 등 두 가지 방향에서 뒤쫓아 가야한다. 가치의 문제는 사회적 동물이 되어야 하는 요구와 자유인이고자 하는 요구를 인간이 서로 끼워 맞추고자 할 때 비로소 대두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고자 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나 가치조차도 대두되지 않는다. 가치의 개념은 심오하고 어렵다. 그 까닭은 가치가 인간들을 사회로 묶고 동시에 인간들을 개인적인 인간이게 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두 가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요구를 인정하지 않는 철학은 가치를 발전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가치를 허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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