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문화사 철저한 기록으로 다가가는 조선시대 궁중의 향연과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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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철저한 기록으로 다가가는
조선시대 궁중의 향연과 의례
1. 서론
한국민속문화사 “000”(이하 우리)는 이 보고서를 쓰면서 조선시대의 궁중의 향연과 의례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한국민속문화사 수업시간에는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민속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서민들의 기층문화’로서 말하는 민속과는 다르지만. 엄연한 하나의 전통문화인 궁중 의례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조선 문화의 형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역시 사회의 지배계층의 문화인 궁중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민속의 이해에 궁중문화에 대한 연구는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조선왕조 유물 중 에는 창덕궁, 종묘와 같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걸작들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 조는 11월 8일에 용산 이촌역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잔치 풍경 : 조선시대 향연과 의례”이라는 특별 전시전을 보고왔다. 이 전시전은 10월 10일부터 12월 6일, 약 두 달간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이 전시전은 왕실의 축하의례, 왕실의 향연, 백성들의 잔치 한마당, 벼슬길의 기념 잔치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 조선시대의 지배층인 왕실의 의례와 향연과 잔치를 제 1,2부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그리고 향연과 잔치에서 나타나는 조선사회의 이념을 생각해보고, 우리가 거기서 본받아야 할 점과 비판해야 할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왕실의 축하의례
전시회의 첫 부분인 제 1부에서는 원자의 탄생, 왕세자 입학, 왕의 행차를 기념하는 축하의례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은 예를 중시한 만큼, 이런 행사들은 항상 정해진 의례에 따라 거행되었고, 그 경과가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제 1부를 보면서 조선시대 축하의례에 대한 생생한 자료들을 직접 느낄 수 있었고, 그 전시순서에 따라 몇 가지 의례를 설명하려고 한다.
세자의 탄생 - 왕세자탄강진하도
제 1부의 첫 전시물은 왕세자탄강진하도(王世子誕降陳賀圖)이다. 이 그림은 1874년 왕의 원자, 즉 고종의 둘째 아들인 순종이 태어났을 때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병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그림인데, 순종의 탄생을 기념하는 진하례(陳賀禮)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 진하례는 창덕궁 인정전에서 이루어졌다.
이 그림을 보면서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의 마당에는 고종의 가마가 있어서 내부에는 반드시 왕이 있어야 할 것이나, 특이하게도 그림 어디에도 고종을 찾을 수가 없다. 다른 그림들도 마찬가지지만 초상화를 제외하고는 왕실의 인물들은 그림 속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왕가의 인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그림 하나에는 한 장면만 나타나있기 때문에, 이 진하례의 진행을 순차적으로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전체적인 모습 하나는 아주 세세하게 그려놨기 때문에 역시 귀중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한 장면을 보면 진하례가 매우 성대하다는 것은 알 수 있는데, 그만큼 왕세자의 탄생은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인터넷 블로거 Gijuzzang Dream에 따르면 순종의 탄생은 적자 및 장자 중심으로 계승되던 왕위 계승을 지켜오던 조선에서 종묘와 사직, 즉 나라의 존속을 의미하는 대경사다. 그래서 고종은 이 날에 지시를 내려서 죄인들을 특별사면하고 관직을 박탈당한 이들을 재임명하기도 하였다.
세자의 성균관 입학 - 왕세자 입학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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