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과 아시아와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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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돌궐과 아시아와 유럽
◇ 차 례 ◇
◈ 돌궐은 무엇인가
◈ 고대 유럽-아시아 역사에서의 돌궐의 뿌리
① 내몽골의 흉노제국
② 남러시아의 사바르왕국과 하자르왕국
③ 아프가니스탄의 에프탈리테
④ 선비족의 북위(타브가츠)
⑤ 헝가리 평원의 아바르왕국
⑥ 다뉴브 강 유역의 불가리아제국
◈ 돌궐의 성립과 특징
① 돌궐은 어떻게 대제국이 되었는가?
② 돌궐-투르크 왕국들의 구조적 특징
◈ 돌궐의 유라시아 외교
① 유연의 고구려와 중원 왕조에의 외교
② 돌궐의 고구려와 중원 왕조에의 외교
③ 로마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에의 외교
◈ 돌궐 제국과 국제 정세
◀ 참 고 문 헌 ▶
□ 돌궐과 아시아와 유럽 □
◈ 돌궐은 무엇인가
돌궐은 [Turk]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오늘날의 터키를 의미한다. 몽골 초원에 있는 옛 돌궐 제국의 비석 글씨에 새겨진 [괵-튀르크(신성한 튀르크)]라는 글에서 나온 정식 민족명이자 나라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터키어와 5스탄어, 위구르어와 몽골어는 통역없이 상호 기본 단어의 50%정도를 말할 수 있을 만큼 투르크어의 구조를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 터키 공화국은 건국 시점을 535년의 돌궐 제국 건국을 기초로 삼으면서, 돌궐의 정치, 경제, 행정제도를 바탕으로 동로마 법전과 서유럽 법제의 형식을 도입하여 유지하고 있다.
돌궐은 중간에 당나라의 직접 통치를 받았던 50년을 중간으로 나누어 초기 돌궐(535-632)과 후기 돌궐(679-745)로 나뉘니, 200년간 동로마제국과 당 제국 사이의 북방 초원 지대를 지배하여 그 영광을 후대의 터키 공화국의 제도에까지 1천년이 지난 후에도 부여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투르크 문화와 투르크어의 형성은 그보다 약 8백년 전의 흉노제국 시대에 투르크 문화와 투르크어의 기초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돌궐의 여러 가지 모습은 흉노제국의 활동을 통해 몇 가지나마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북방 초원의 나라 중에서 이름을 떨친 나라는 고대사의 흉노, 중세사의 돌궐, 근세사의 몽골이었으니, 이 중 현재까지 이들 북방 민족이 자립한 나라가 바로 돌궐족의 터키, 몽골족의 몽골로서 현재의 세계 지도에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흉노에서부터 투르크족의 뿌리를 추적하여 돌궐의 당시 모습을 간단히 알 수 있으며, 돌궐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터키-몽골 역사는 물론이고, 대한국민의 미래 창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투르크어 및 투르크 문화의 뿌리찾기를 통한 돌궐의 역사를 먼저 언급하고, 돌궐과 유라시아의 교류를 서술함으로써, 돌궐제국이 중국중세사와 서양중세사에 큰 영향을 끼친 점을 말하고자 한다.
◈ 고대 유럽-아시아 역사에서의 돌궐의 뿌리
① 내몽골의 흉노제국
돌궐의 뿌리는 흉노에서 시작된다. 흉노 제국의 지배층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 다양한 유목 민족들을 통치했던 투르크족 계통의 연속된 극소수 혼혈 왕족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흉노-훈족의 고분에서 뾰족머리유골의 발굴은 [흉노 왕가 = 훈 왕가]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흉노족과 훈족이 같다는 점은 당시 흉노-훈족의 근거지 이동 경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질지 선우가 후한의 원정군과 싸울 당시에 흉노의 본거지가 카자흐스탄의 탈라스 강변으로 옮겨지니, 파르티아 원정을 준비하였으며, 155년에 선비족이 몽골 초원을 장악한 뒤에 흉노족이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해서 훈족이 355년에 카스피해와 아랄해 사이의 알란 왕국를 정복하고, 375년에 볼가강 유역을 정복한 후, 395년에 로마제국을 침공했다. / 훈족의 왕 아틸라 / 212쪽 / 패트릭 하워스 저작 - 김훈 번역 / 가람기획 / 2004년 /
20세기에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연구를 통해 흉노의 언어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로마사에 등장한 흉노-훈 왕족의 이름에서는 후기의 고트어의 영향을 받은 요소를 빼면, [카라톤(勢道家), 문주크(깃발), 아틸라(출생지)]는 물론이고, [일레크, 덴기지크, 이르네크, 아이바르스, 옥타르, 아리칸]의 유명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투르크어 계통임이 명백하다. 또한, 사산조 페르시아의 비문에서는 [에르크 카프간, 톱차크, 타르칸, 베그, 쿠브라트, 쿠르타크] 등의 카프카스 산맥 북부의 훈족 지배자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이름들도 모두 투르크어 계통이다. 이외에도 흉노-훈 왕가의 작위 및 부족명과 여러 칭호에서의 투르크어 계통 분석으로도 투르크계 문화였음이 확실하니, 훈-흉노 왕가가 돌궐족의 뿌리라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흉노와 돌궐의 초기 수도가 같으며, 둘 다 동서 무역을 주도한 제국을 이루고, 샤머니즘에 입각한 자주독립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도 흉노족은 돌궐족의 뿌리임이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로마제국이나 한-당제국의 책봉체계를 거부하고 왕가 혼인 동맹을 통해 동서 무역을 주도하며, 몽골의 외튀켄 평원에서 무예의 탁월성을 내세워 부족장회의에서 선대의 선우 또는 후대의 칸(Khan)으로 선출되었고, “텡그리 샤머니즘”(天神崇拜)에 입각하여 자신만의 독립을 꿈꾸었다는 점은 흉노와 돌궐과 몽골, 이 3대 고대-중세-근세 유목제국의 특성이 일치한다. / 유라시아유목제국사 / 129쪽 / 르네 그루세 저작 - 김호동 번역 / 사계절출판사 / 1998년 /
북흉노는 100년을 전후하여 외몽골에서부터 카자흐스탄까지 한 제국의 대토벌작전으로 정치적으로 붕괴된 채 명목을 유지하다가, 155년 선비족이 몽골초원을 장악하면서 카스피해 방향으로 이주하여 훈 제국으로 계승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으며, 훈 제국은 5세기 전반의 아틸라 대왕의 사후 동로마 황제 레오 1세의 분열 공작 및 전면 공격으로 패배하여, 동로마에의 충성을 약속하고 흑해 북부로 되돌아가 정주하면서 7세기 불가리아제국의 선조가 되었다. 한나라의 제후국으로서 종속된 남흉노는 한나라 멸망과 함께, 왕국 자체는 폐지되었지만, 남흉노 선우 일가는 귀족층으로 존속되었고, 5호 16국에 가담한 남흉노인들은 한화가 많이 이루어진 상태였으므로, 황제를 꿈꾸다 1백년도 못가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② 남러시아의 사바르왕국과 하자르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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