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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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목 차
Ⅰ. 서론 ……………………………………………………… 1
Ⅱ. 노천명의 생애
1. 출생과 성장 ………………………………………………………… 1
2. 학창 시절 …………………………………………………………… 2
3. 문단 활동 …………………………………………………………… 3
4. 시련의 시절 ………………………………………………………… 4
5. 죽음에 이르는 길 …………………………………………………… 5
Ⅲ. 노천명의 시세계
1. 노천명의 문학사적 위치와 특징 ……………………………………… 6
2. 노천명의 삶과 시 - 상실의식, 고독, 과거 지향적 태도 ……………… 6
Ⅳ. 결론 …………………………………………………… 12
참고문헌
Ⅰ. 서론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많은 패러디를 낳은 이 문장은, 노천명 시인의 대표시 <사슴>의 첫 구절이다. 한국의 대표시인이며, 여류시인의 선두주자인 노천명이지만, 그녀의 시세계에 대한 문예사조적인 분석은 간단하게만 정리되어있다. 전원파(1930년대 중반) - 1935년경에 반도시적 경향의 전원파 시인들의 활동. 도시 문명을 벗어나 농촌과 자연을 소재로 택하여 자연 친화적 경향을 보임. 김동명, 김상용, 신석정 등이 해당함. 김동명은 시집 하늘에서 전원과 자연을 예찬하였고, 김상용은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 전원에서의 삶을 갈망하였음. 신석정은 시문학에서부터 작품을 발표하여 전원적, 목가적(牧歌的) 시풍을 보임. 또한, 1935년을 전후하여 시원(詩苑)을 통하여 시작 활동을 한 여류 시인으로는 노천명과 모윤숙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시세계는 세태나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위치는 중요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여류시인의 역할이 그렇게 특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까지 시 장르의 경우는 여성문학으로서의 성취를 크게 보여주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노천명, 모윤숙 등의 시인이 여류시인으로서 명성이 있었으나, 그들의 시는 감성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해 문예사조적인 발전을 이룩해내지는 못했다.
평생을 고독과 자의식에 대한 고민, 이 모든 것을 절제하려는 시어와 함께 살았던 그녀, 하지만 친일적 문단활동으로 스스로의 생애에 오명을 남겼으며, 이러한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끝끝내 남들에게는 정갈한 모습만을 보이고자 했던 자존심이 센 ‘여장부’ 노천명.
그녀는 이토록 악명도, 명예도 드높은 인물이다. 시인으로서의 그녀를 유명하게 한, 그리고 그녀가 일제강점기의 현실에도 아름다운 시만을 추구한 이유, 그것은 그녀가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치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노천명은 시인인 동시에 사랑받고 싶었던 한 명의 여자이다. 우리는 노천명의 시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고, 생애의 시간적 흐름과 고독의 정신적 흐름에 맞추어 그녀의 시세계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Ⅱ. 노천명의 생애
1. 출생과 성장
노천명은 1911년 9월 1일 황해도 장연군 박택면 비석리에서 태어났다. 노천명의 어릴 때 이름은 돌림자를 따라 ‘기선(基善)’이라고 지었는데, 여섯 살 때 홍역을 심하게 앓은 후 다행히 천명(天命)으로 살았다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어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형제로는 오빠 노기철과 언니 노기용, 이복 남동생인 노기숙이 있었다. 노천명은 형제들과의 우애가 두터워 시와 수필 등을 통하여 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노천명의 고향인 장연은 서해안과 인접한 곳이었다. 그녀는 이 바다를 매우 좋아하였고, 비록 병약하였으나 바다와 고향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이는 그녀의 수필에서도 드러난다.
바다가 가까웠던 관계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물귀신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치 바다를 그렇게 좋아했다. 밀물이 들었다 나가는 때면 동네 집의 섭섭이 큰년이 확실이를 따라서 언제나 조개를 주으러 가는 것이었다. 해감 흙 구멍이 빠끔빠끔 뚫어진 곳에서 조개를 파내는 것이 그렇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언제나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는 나는 해변 검탕흙에 연상 미끌어지면서 남보다 조개를 많이 캐려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노천명, <썰물에 밀려간 해변의 자취>, 『노천명 전집 2』, 솔 출판사, 1997,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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