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에 대하여 실학 사상 전개과정 실학파 계보 실학자 실학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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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 후기 실학에 대하여
Ⅰ. 조선후기, 과연 實學이 존재하였는가
실학은 일반적으로 조선후기 새롭게 대두되는 새로운 학문으로 1939년 다산 정약용이 죽은 지 100주년이 되던 해에 진단학회에서 다산이 했던 학문과 비슷한 학문 및 사상을 통칭하여 실학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실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것이 기존 성리학과는 달리 現實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 實證적 학문의 경향을 띤다는 점과 현실을 비판, 파악, 진단하여 개혁적이고 實用적인 학문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실학의 발생 배경은 먼저 사회적 측면과 학문·사상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선 후기는 왜란과 호란 등의 거듭된 전쟁으로 인해 전국토의 황폐화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학문사상적으로는 새로운 세계관의 자극을 들 수 있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게 되면 조선 전기의 정통 성리학과 구별되는 陽明學, 考證學, 西學 등의 새로운 학풍이 전개되고 있었다. 또한 실학의 발생 배경을 외적인 측면과 내적인 측면으로도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내적으로는 주로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 전반에 급격한 변동이 있었고 조선의 사상계에서 성리학이 모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치면에서도 집권 세력이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체체 유지에만 집착하여 통치질서가 경직화되어가고 있었다. 외적인 배경으로는 학문·사상적인 측면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정통 성리학과 구별되는 陽明學, 考證學, 西學 등의 새로운 학풍이 전개된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새로운 학풍들이 성리학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했고, 이러한 다양한 배경 하에서 실학이 나타났던 것이다.
실학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우리가 흔히 ‘실학’이라고 부를만한 사상이 조선 후기에 정말로 존재했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개념과 범주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다. 또한 실학이 후대 개화사상이나 동학농민 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자본주의 맹아와도 연결시켜보려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실학이 존재하였는지, 존재하였다면 실학의 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18세기 실학의 두 학파인 星湖學派와 北學派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실학사상의 전개과정과 실학파의 계보
임진왜란을 거쳐 병자호란을 치르는 17세기 초기에 전통적 도학파의 일반적 관심이 禮學과 義理論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 일부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현실의 경제적 내지 사회제도적 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7세기 초기의 실학파적 학풍의 발생은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다음 세대에서 더욱 구체화될 문제의식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학파의 준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후반에 와서 실학파의 성격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을 때의 인물로 유형원과 박세당을 들 수 있다. 유형원은 그의 저서인 『반계수록』에서 정치, 사회, 경제의 조직적인 제도 개혁론에 관심을 기울인 초기 실학파라고 할 수 있다. 박세당은 당시 排淸義理論에 대해 현실적 事大論을 제기하는 데서 도학파의 정통적 입장으로부터 분리되었고 朱子註를 벗어난 경전해석 등에서 실학파의 입장을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계기를 이룬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시기를 실학파의 맹아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에는 17세기에서 제기된 실학사상의 발생배경이 되는 제반 사상적 요소들과 새로운 현실적 문제의식들이 정리되어 실학파의 학파적인 확립을 이루게 되었다. 18세기에 나타난 실학파의 두 조류는 전반기에 출현한 星湖學派와 후반기에 출현한 北學派로 구분이 될 수 있다. 星湖 이익은 이기론, 예학 등에 상당한 조예를 가졌지만 그의 학문적 관심은 사회제도의 개선에 있었다. 특히 이익은 당시 漢譯된 서학 문헌에 해박한 지식을 가져 천문 역법 등 서양 과학지식에 적극적인 긍정 태도를 밝혔고 천주교 교리에 대해서도 신앙적 내용에 대한 부분적 비판을 보여 주면서도 윤리적 내용에 긍정적 태도를 가졌다. 이러한 서학에 대한 이익의 지식과 관심은 그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어 이른바 성호학파에 있어서 愼後聃, 안정복 등 성호우파 입장과 권철신과 같은 성호좌파 입장으로 분열이 되지만 서학이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성호학파가 근기 지방의 남인을 중심으로 형성이 되었다면 다른 한편 노론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청나라를 왕래하면서 그 문물의 영향을 받아 실학사상을 발전시킨 北學派가 있다. 홍대용은 청조의 서양의 과학지식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북학파의 선두가 되었고 도학파의 排淸義理論을 자주의식으로 극복하여 전통적 질서의 근원적 개혁을 추구하였다. 홍대용은 지구자전설을 내세울 만큼 자연과학적 사유를 심화시켰다면 박지원은 청조 문물을 수용함으로서 생산기술과 유통에 관한 개선을 촉구하면서 특히 소설을 통하여 전통적 질서의 모순을 폭로하고 비판하여 실학사상을 문학적 형식으로 발현시켰다. 또 박제가는 서얼 출신이지만 정조대 규장각 검서관(奎章閣 檢書官)으로 활동을 했으며 『북학의』를 저술하여 북학파의 실학사상을 정리하였다.
성호학파가 유형원을 계승하면서 토지 및 행정 기구 등 사회제도의 개선에 치중했다는 경향에서 경세치용 학파라고 한다면 북학파가 상공업의 유통과 일반 기술의 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용후생 학파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18세기는 실학파가 학파적 면모를 확립하였다는데 특징을 가지지만 그 철학적 입장은 아직 형성되는 과정이고 전통의 기존제도에 대한 비판적 개혁론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전반에 활동하였던 정약용과 김정희에 이르러서는 실학파의 철학적 기반이 확립되고 19세기 중엽의 최한기에 있어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실학파적 철학이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정약용은 성호학파에서 나와 西學의 영향을 광범위하게 수용하면서 고증학적 지식으로 경학에 대한 새로운 체계적 해석을 시도하였고 자신의 경학적 입장과의 연관 속에서 사회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였다. 김정희는 박제가의 영향을 받아 북학파를 계승하면서 청조의 고증학을 수용하여 고증학적 실학사상을 전개하였다. 또 최한기는 기존 전통으로부터의 영향이 극소화되고 서학의 영향도 자연과학을 벗어나서는 거의 용해되어 독자적인 철학체계를 구성하는 진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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