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보이 Old Boy 복수심에 의해 희생된 두 남자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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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올드보이》
『복수심에 의해 희생된 두 남자의 인생』
1. 서론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여기 기이한 운명의 한 남자(오대수)가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 15년동안 복수를 준비한 또 한 남자(이우진)가 있다. 이우진은 15년 동안 오대수를 사설 감옥에 감금시켜 놓는다. 그 방 안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있던 이우진에 대한 단서, 내지는 이우진의 선물이 바로 웃는 듯 우는 듯한 그림 아래 써있던 이 격언이다. 이 말이 오대수에게 15년을 살 힘을 주었다면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우진에게는 그 격언이 오대수에게 주는 최소한의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TV와 더불어 미칠 것 같은 현실을 미치지 않게 만들어준 도구랄까. 다르게 생각해보면 반어적으로, 이우진이 오대수의 모습을 비웃듯이 써 놓은 말 같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해 보고자 하는 것은 영화 속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복수하는 과정과, 오대수의 인생이 이우진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게 되는 이 상황 속에서 두 인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우진에겐 오대수가 충분히 복수할 만한 대상이었고, 오대수 에게도 이우진이 충분히 그럴만한 인물이었다. 오대수의 작은 말 한마디가 소문을 타고 이우진의 누나를 죽음으로 몰고갔고, 이우진에 의해 오대수는 가족과 자신의 15년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기 때문이다. 지극히 두 사람의 관계는 이율배반적이다. 적어도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선뜻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 다 가해자이자 희생자 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우진과 같은 모습을 나타낼 수도, 오대수와 같은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다. 두 인물의 진지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이우진과 오대수를 동시에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영화 올드보이는 원작 만화에서 사설 감옥에 10년(영화는 15년)을 가둔다는 설정과, 그것이 아주 사소한 어떤 유년기의 사건 때문이라는 단 두 가지의 포맷을 빌려왔을 뿐,(물론 복수라는 감정을 소재로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원작과는 다른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만화에서의 복수는 설득력이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영화 속 복수의 이유는 좀 더 명확해졌고, 둘의 관계 역시 좀 더 팽팽히 맞서는 느낌을 영화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원작에 충실하기만 한 것보다는 그것을 가다듬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낸 각본의 힘을 우선 칭찬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이러한 이유에서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글과 그림의 예술인 만화와 말과 영상의 예술인 영화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문학으로서 만화를 바라보고, 하나의 대중매체로 영화를 바라본다면 이 둘은 서로의 비교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 둘의 어떤 차이가 영화의 압도적 승리를 이루어 낸 것인가. 감독이 그것을 어떻게 영화 속에서 형상화 한 것일까.
2. 영화를 풍부하게 하는 소재의 차용
앞서도 말했지만 올드보이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인 만화의 기본 설정에 좀 더 풍부한 이야기를 덧붙여 전혀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있다. 복수라는 감정을 초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사실 만화의 그것은 그 원인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짦게 말한다면, 유년시절 어두운 그림자를 가지고 있던 나(영화 속 이우진 분)의 노래를 듣고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잊으려 하는 주인공(오대수 분)에게 나는 말할 수 없는 치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이유로 10년(영화는 15년) 동안 초등학교 동창생인 주인공(오대수 분)을 감금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사실 복수를 결심하는 이유치고는 조금 싱겁다. 물론 사람의 개인적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역시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존재를 불쾌하게 느끼고 무시하는 태도를 가만히 두고 견딜 수는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원인에 의한 복수가 아닌, 개인적인 치욕감으로서 10년 동안 상대를 감금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것을 감독도 안 것일까. 영화 속 복수에는 보다 강력한 이유인 ‘죽음’이 함께 맞물려 있다. 이렇듯 각색하는 과정에서 복수의 이유라든지 여러 가지 요소를 빼고 더함으로서 영화는 한 층 깊은 완성도를 가지는 영화 올드보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딪히고 살아가는 현실세계와는 조금 다른 비현실적이지만 신비한 소재와 공간들이 영화에 등장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먼저 만화에서 그대로 차용한 내용은 사설감옥과 최면 후 암시 등이다. 사설감옥은 비공식적인 공간임과 동시에 현실세계의 건물에서 7층과 8층을 동시에 눌러야만 출입할 수 있는 비밀의 공간이기도 하다. 사회와 완벽히 격리시켜, 그를 동시에 살인자로 만들어낼 수도 있는 단절된 공간이다. 비공식적 공간이므로 현실세계에서의 존재를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지만 관객들은 그 속에서 현실과는 한 발 떨어진 세계로 영화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상황에 대한 하나의 공포로 다가온다.
또 최면 후 암시를 사용, 오대수와 미도를 사랑하게 한다는 설정은 최면과 암시라는 낯선 방법으로 두 사람을 엮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후에 최민식이 자신의 기억을 잊기 위해 이 방법을 쓰지만 마지막에 그 최면 후 암시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마지막 결말이 관객들에게 결말을 추측하게 하는 열린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면은 자신의 의식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자신의 내면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를 누군가에게 맡겨 내보이는 행위가 최면이라는 몽환적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 또한 영화 속 세계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낯선 세계임을 느끼게 하는 데 한 몫 거들고 있다.
그렇다면 원작에 없었던 소재를 새로이 작가적 상상력으로 덧붙인 장치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근친상간, 개미환상 등에 주목해 볼 수 있다. 근친상간의 사전적 의미는 근친과 서로 간음하는 일.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 근본적 이유이자 복수의 종착점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유년시절 오대수가 이우진과 한 여자와의 사건을 우연히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가 누나였기 때문에 발생한 복수라는 의미를 가진다. 남매로 엮어진 두 남녀의 사랑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기 충분한 것이었고, 그것을 발설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누나의 죽음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우진에게 누나의 죽음은 가족의 죽음과 애인의 죽음이 동시에 이루어진, 말하자면 두 배의 아픔이었기에 복수의 이유는 좀 더 명확해진다. 이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는 이우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복수의 방법으로도 철저하게 이용된다. 결국 이우진은 복수의 한 방법으로 오대수를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개미환상, 오대수는 사설감옥에서 자신이 자신의 부인을 죽인 살인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자신의 몸에서 꿈틀대다가 개미떼가 튀어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미도 역시 자신의 외로웠던 과거에 홀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사람 크기 만한 개미 한 마리를 보게 된다. 지극히 외로움을 느낄 때만 볼 수 있다는 개미환상은 영화를 읽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코드다. 이것은 작가가 창작해 낸 내용 중 하나인데, 정신적으로 외롭거나 쇠약해져 있을 때 환청이 들리고 환각 상태에서 이상한 물체를 보게 되는 등의 현상과 개미라는 소재를 더하여 만들어 낸 창작물로 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말하듯 개미는 떼로 몰려다니는 특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외로울수록 단체습성이 있는 개미를 동경하듯 개미환상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개미를 외로움의 상징으로 등장시킨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영화가 단순히 복수극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외롭고 고독한 존재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아마 그 둘 모두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정말 혼자라고 느껴졌던 그 순간, 아무도 나를 뒤돌아보지 않고 나의 진실 따위는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고 느껴졌던 그 순간에 개미환상을 겪게 된다. 아마 영화 속에서 보여지진 않았지만 또 하나의 주인공인 이우진 역시 개미환상을 겪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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