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대명의리론의 전개 북학론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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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 후기 대명의리론의 전개~ 북학론의 전개
대명 의리론의 배경
안정된 농경사회 기반 위에 성리학적 이념을 추구한 조선은 16세기 신 구 정치세력 교체기에 즈음하여 1592년부터 7년간 일본과의 전쟁(임진왜란)을 겪음. 사림출신 관료들의 대명외교의 성과에 힘입은 조.명 연합군의 활동과 지방 사림들이 주축 된 의병, 이순신이 중심이 된 해전의 승리 등으로 일본을 몰아내고 승리함.
일본은 정명가도(선조때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부에 대하여 중국 명나라를 치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 말. 선조 24년(1591) 3월에 통신사 편에 보내온 도요토미의 서신 가운데 들어 있었는데, 그 의도는 조선과 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치자는 것이었으나 조선은 단호히 거절하였으며 이것을 빌미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를 내세우며 동아시아 주도국이었던 명을 치고 중원의 주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짐.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은 소중화의식(조선은 작은 중국으로써 중국과 문화적 동질성 가진다는 의식)과 명의 실체를 다시금 확인.
임란 후 광해군대의 북인정권은 의병활동으로 큰 성과 얻어 정권잡음. 하지만 학문적 다양성으로 인한 결집력 취약과 순수성리학자들과 다른 정치노선으로 혼란.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아들이었고 명의 책봉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적자논란에 휘말림. 이에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이 적자의 칭호를 받고 후 세자 책봉에 영향력이 확실시되자 왕권위협을 느끼고 그를 강화로 귀향 보냈다가 살해. 결국 1623년 율곡이이가 계승한 서인과 이황계열인 남인이 동조하여 성리학적 이념을 되돌린다는 목적아래 인조반정 일으킴. (사림정권) 하지만 1636년 여진족은 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명의 국운이 기우는 것을 보며 명의 동맹국인 조선을 선제공격함. (병자호란) 척화론(척화론; 청을 정벌하여 문화가 높은 조선이 문화가 낮은 오랑캐에게 당한 수치를 씻고, 나아가서는 조선의 오랜 우방 국가로서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와 준 명에 대하여 의리를 지키자는 주장)과 주화론(청의 문물이 발달함에 따라 그 문화를 받아들이자)이 치열한 이념투쟁을 벌였으나 결국 현실에 순응하여 주화론을 받아들이고 청에 항복. (삼전도 굴욕)
<<척화론>>
"화의로 백성과 나라를 망치기가 ... 오늘날과 같이 심한 적은 없습니다. 명나라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모요, 오랑캐(청나라)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모의 원수입니다. 신하된 자로서 부모의 원수와 형제가 되어서 부모를 저버리겠습니까? 하물며 임진왜란의 일은 터럭만한 것도 황제의 힘이어서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먹고 숨쉬는 것 조차 잊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나라가 없어질지라도 의리는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찌 차마 화의를 주장하는 것입니까.." <윤집의 상소>
<<주화론>>
" 주화 (主和) 두 글자는 신의 일평생에 신변의 누가 될 줄로 압니다. 그러하오나 신의 마음은 아직도 오늘날 화친하려는 일이 그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화친을 맺어 국가를 보존하는 것보다 차라리 의를 지켜 망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신하가 절개를 지키는데 쓰이는 말입니다. 종묘와 사직의 존망이 필부의 일과는 판이한 것입니다.... 현재 논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묘년에 화친을 이미 맺은 것은 의리에 해로움이 없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적이 이미 천자라고 외람된 호칭을 하였으니, 다시는 그들과 사신 왕래를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이 말이 그럴 듯 합니다만, 실상은 깊이 생각한 것은 못 됩니다... 그들이 천자라고 외람된 호칭을 하든 안하든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닌가 합니다. 어찌 예로써 오랑캐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경망하게 큰 소리를 쳐서 오랑캐들의 노여움을 도발, 마침내는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내지 못하게 된다면 그 허물이 이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늘 생각해보아도 우리의 국력은 현재 바닥나 있고 오랑캐의 병력은 강성합니다. 정묘년의 맹약을 아직 지켜서 몇년이라도 화를 늦추시고, 그 동안을 이용하여 인정을 베풀어서 민심을 수습하고 성을 쌓으며, 군량을 저축하여 방어를 더욱 든든하게 하되 군사를 집합시켜 일사분란하게 하여 적의 헛점을 노리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상의 계책일 것입니다.... " <최명길의 상소>
삼전도 굴욕
[인조실록]
삼전도에 나아갔다. 멀리 바라보니 청태종이 황옥을 펼치고 앉아 있고 갑옷과 투구 차림에 활과 칼을 가진 자가 방진을 치고 좌우에 서있었다. 악기를 진열하여 악기를 연주하였는데, 대략 중국 제도를 본 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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