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개설] 현대인을 위한 고전,『최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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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고전,『최척전』
최척전은 그 동안 읽어보았던 고전 소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 작품이다. 최척전을 빌렸을 때 도서관사서의 ‘홍길동전과 표지가 똑같다.’라는 말을 듣고, 그저 ‘홍길동전과 비슷한 영웅소설인가보다.’라고 생각한 것이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이었다. 그 생각은 최척전을 읽어가면서 달라졌지만, 책을 읽을 때 사전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최척전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그 인물과 내용이 오늘날과도 많은 부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가 있듯 최척전은 현대인을 위한 고전, 혹은 현대를 사는 나를 위한 고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인물, 최척>
먼저 그 첫 번째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 최척이다. 그동안 읽어 온 대부분의 고전소설의 주인공들은 노력에 의해 완성된 사람들이라기보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척은 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타고난 영웅이 아닌 개과천선형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아기장수 우투리 설화에서 아들의 비범한 능력이 두려워 아들을 죽음에까지 내몰았던 노부모와는 다르게, 매일 공부는 하지 않고 밖으로만 나도는 아들 때문에 속 썩는 최척의 아버지 최랑의 모습은 오늘날의 부모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나중에야 아버지의 의중을 헤아린 최척은 아버지와 절친한 정상사의 가르침 아래 부단히 노력해 높은 학식과 넓은 인격을 가진 최고의 선비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최척의 선비 됨은 생물적으로 ‘후천적 획득형질’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 최척이, 나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작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부분이다.
최척은 타고난 선비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개척해 가는 사람도 아니었다. 홍길동 같은 영웅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등 그 시대에 한 획을 그은 것과는 달리, 최척은 그저 그 시대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평범한 개인이다. 정인(情人) 옥영과의 혼인을 앞두고 전쟁터에 나가게 된 최척은 전쟁에 나가서도 옥영생각에 싸움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고 결국 몸져눕게 된다.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보다 정인을 더 그리워했던 최척의 모습은, 충(忠)을 중시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보다 현대를 사는 우리와 더 닮은 모습이다. 그 후에도 전쟁으로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 중국에 이르게 되는 최척의 여정은 개인이 선택하여 개척한 것이라기보다 하나의 큰 흐름으로 보여 진다. 최척은 그 흐름을 역행하거나 대항하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견디어 갈 뿐이다. 곳곳에서 많은 조력자와 만나 다시금 삶의 활력을 찾는 최척. 조력자의 출현은 영웅소설의 구조에서 말하는 구성의 조건, 우연성에 기댄 것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최척의 사회성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과 최척의 만남은 우연일지 모르나 첫 번째 조력자 여유문은 최척의 한자솜씨를 보고 자주 전쟁터에 데려가기도 하는 등 그의 능력을 알아보았던 사람이었고, 두 번째 차(茶)장사 주우와 유랑은 떠난 것도 벼슬보다는 풍유를 즐겼던 그들의 가치관에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최척의 조력자처럼 현대의 삶에서도 나의 능력과 사회성이 있어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력자들을 만나는 것이 우연적 기회일 수 는 있지만 그 기회를 잡는 것은 개인, 즉 나에게 달려있다.
<진취적 여성, 옥영>
사실 최척전이 나에게 많은 공감과 교훈을 주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그건 바로 최척의 아내 옥영 때문이었다. ‘소설을 거듭 읽으며 다가오는 것은 한 집안의 고단한 삶과 옥영이란 여인의 능동성이다.’ 간호윤의 비평론, 2004
라는 말에 공감한다. 최척의 아내가 되는 옥영, 그녀는 안방에만 갇혀있는 양가집 규수가 아니었다. 옥영은 최척의 시 읽는 낭랑한 목소리에 반해 먼저 시를 적은 편지로 애정공세를 하는가 하면, 가난한 최척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는 강력한 주장으로 그 결혼을 성사시킬 만큼 의지력 있는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옥영이 사대부 아녀자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녀자로서 해야 할 일들은 마땅히 해내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옥영의 모습은 억눌려있던 조선 사회의 여성들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알파걸’혹은 ‘워킹맘’들과 비슷하다.
옥영의 의지력이 빛을 발하는 때는 후에 옥영과 그의 아들 내외가 중국에 홀로 남겨져 최척을 기다리는 부분인데, 장성한 아들도 주저하는 조선까지의 뱃길을 의지력하나로 아들을 지휘하여 떠나는 그녀의 모습은 강한 어머니이자 위대한 여성의 모습이다. 그녀의 의지력에는 치밀한 계획성까지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조선으로 떠나기 전, 아들내외에게 중국어, 일본어를 배워두라고 하는데 그것은 뱃길에서 여러 나라의 해적은 만나 화를 당할까 염려한 것이다. 그녀의 우려대로 그녀는 해적을 만나기도 하고 무인도에 표류하기도 했으나 그녀의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여러 위기를 모면하고 결국 세 사람은 무사히 조선 땅에 발은 들이게 된다. 이 같은 세 사람의 항해의 지휘자가 아들인 몽선이 아니라 어머니 옥영이라는 점은 과거에도 다르지 않았던 어머니의 위대한 능력 또한 느끼게 한다. 물론 옥영이 어머니로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위에 말했던 것 같이 최척에게 먼저 자신의 마음을 건넨 것도 옥영이었으며, 매일 전쟁 때마다 위기를 겪는 최척을 걱정해 자신의 목에 칼을 대면서 까지 출전을 반대했던 옥영의 모습은 지아비를 섬기는 아녀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 지고지순하다기 보다 진취적이고 의지적인 여성의 주장으로 보였다. 그 시대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오늘날에도 여성의 지위는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위기에 당당히 대처하고,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줄 아는 옥영의 모습은 나에게 뿐만 아닌 현대의 여성에게도 교훈이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가족구성원의 무사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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