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시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황진이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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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고전시가교육론 >
기녀시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황진이 시조
1. 본문
1) 원문.
① 冬至(동지)ㅅ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춘풍) 니불 아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②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냐.
이시라 더면 가랴마 제 구여
보내고 그리 情(정)은 나도 몰라 노라.
③ 靑山(청산)은 내 이오 綠水(녹수) 님의 情(정)이,
綠水(녹수) 흘러간들 靑山(청산)이야 變(변)손가.
綠水(녹수)도 靑山(청산)을 못 니져 우러 예어 가고.
④ 靑山裏(청산리) 碧溪水ㅣ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一到滄海(일도 창해)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明月(명월)이 滿空山(만공산)니 수여 간들 엇더리.
2. 주제
①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
②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이별의 정한
③ 임을 향한 변함 없는 사랑
④ 인생의 덧없음과 향락에 대한 권유
3. 기존 연구 정리
1)기녀시조
기생이 언제부터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그 유래가 아무래도 멀리 신라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나려 오면서 신분상 최하위인 팔천(八賤)의 하나이기는 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신분 상승을 이루어 양반집의 부녀로까지 가능했음을 볼 수 있으며, 대체로 기생은 관부(官府)의 기적(妓籍)에 올라 있어 관기(官妓)들이지만 황진이처럼 신분의 제약을 덜 받는 경우도 있다. 거주하는 곳에 따라 경기(京妓)나 지방기(地方妓)로, 재능에 따라 시기(詩妓)나 가기(歌妓), 도는 창기(唱妓) 등의 구별이 있고, 조선조 말기에 와서 일관적으로 기생은 천대(賤待)해서 부르는 갈보(蝎甫)란 칭호가 생겨 여기에도 여러 부류가 있었다.
시조는 기생들 가운데 가기(歌妓)라고 불리우는 기생들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시기(詩妓)보다는 한단계 아래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 대부분 주석(酒席)과 같은 연회석(宴會席)에서 상대자의 요구에 응하거나, 아니면 사랑하던 상대방을 그리워한 나머지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황진이와 같은 기생은 많은 일화가 각종의 문헌에 남아 있어 몇몇 작품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지만 여타의 기녀들은 가집에 따라 작가의 혼동이 많고 후대에 와서 누군가에 의해 잘못 알려졌을 가능성도 있어 신빙성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기녀 시조의 특색이라면 운률이나 음악성이 훌륭하며, 시조에 자신의 인상을 상대방에게 뚜렷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름을 삽입한 점과, 형식상 평시조만 있다고 하는 점이라 하겠다. 황충기(1999), 『여항인과 기녀의 시조』, 국학자료원, p. 95.
황진이 또한 기녀로서 다른 기녀와 삶의 조건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다른 기녀에 비해 총명하고 예인적 자질과 미모를 겸비했다고 해서 그 삶의 본질적 속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더욱 그 삶의 불구성을 두드러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나간 왕조에 대한 한과 상실의 정서적 바탕은 기녀로서의 삶의 특성 때문에 더욱 절실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고려조에 대한 백성으로서의 정서가 아닌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무상감이 공유된 것이다. 시는 고도(古都)의 고적한 분위기와 자연의 무구한 상태를 통해 그러한 자기 정서를 실어 노래했으므로 고전적인 전아함이라는 최소한의 격조를 유지한다. 노인숙(2001), 「황진이 한시 연구」, 『청람어문교육』, 청람어문교육학회, p. 237.
2) <①冬至(동지)ㅅ 기나긴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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