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배경론] 숙향전을 통해 살펴 본 도교 사상의 문학적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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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숙향전’을 통해 살펴 본
도교 사상의 문학적 수용
***** 목차 *****
Ⅰ. 서론
Ⅱ. 본론
1. 조선의 도교
2. 숙향전에 나타난 도교적인 요소
2-1. 도교적 상상력의 문학적 변모
2-2. 숙향전 전체의 단락 구성
2-3. 숙향전에 나타난 도교적인 요소
3. 숙향전의 향유 방법
4. 고전서사의 창작 동인으로서의 도교사상
Ⅲ. 결론
Ⅰ. 서론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작품을 보고 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왜 그럴까? 원작을 통해서 우리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여러 가지 상상력들이 영화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원래 우리 머리 속에 만들어진 스케일보다 훨씬 작게 혹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실제로 개인은 상상을 통해서 굉장히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원작을 재구성하는 영화가 갖는 한계처럼 상상력 역시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도교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상상력의 요체로서 문학에 있어서 그 나름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교가 당시에 어떻게 작품 속에 녹아들 수 있었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 [숙향전]을 예로 들어 그 속에 나타난 도교 사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조선시대 속에서 도교사상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숙향전]이라는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는 도교적인 요소들을 검토한 후, 그 당시에 [숙향전]이 어떤 방식으로 향유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향유 방식이 작품 속에 도교적 요소가 삽입되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조선의 도교
조선의 도교는 초기에는 전 왕조인 고려의 것을 그대로 계승하지만 더 큰 전통인 불교가 참담하게 억압받는 판국에 도교라고 무시할 리 없었다. 이성계 자신은 왕이 되기 전에 태백금성 같은 별에 제사를 지내고 왕이 된 후에도 전국의 성황당에서 제사를 올리게 하는 등 도교 의식에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유신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도교는 왕실에서마저 날로 쇠퇴해 갔다. 유신들이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별이나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은 중국의 천자나 하는 일이지 일개 제후국인 조선의 국왕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교는 조선조 초기부터 정리작업에 들어간다. 우선 가장 두드러지는 사건은 복원궁 예종 때 도가(道家) 이중약(李仲若)이 휘종(徽宗)이 다스리고 있던 송나라에서 도교를 배우고 귀국한 뒤 도관(道觀:도교 사원) 설치를 건의하여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설치 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1120년(예종 15)에 왕이 직접 신에게 제사를 지낸 친초(親醮) 기록이 있고, 또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의하면 1110년에 송나라 휘종이 우류(羽流:道士) 2명을 보냈고 곧이어 예종이 정화(政和:휘종 연호, 1111~1117) 연간에 복원관을 세우고 도사 10인을 두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를 전후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당시 복원궁은 왕궁의 북쪽에 있던 태화문(太和門) 안에 있었는데, 정면에서 볼 때 앞 방(榜)은 부석지문(敷錫之門), 뒷 방은 복원지관(福源之觀)으로 적혀 있었다. 또한 전각 안에 그려진 노자의 그림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모두 감색(紺色)으로 되어 있어 휘종이 그린 노자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복원궁에서는 여러 종류의 제사가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 태일(太一)은 별 이름을 신격화한 신앙으로 풍우나 한발, 기근 등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이 때 제사는 도사가 주관했으나 축문은 문신이 작성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1392년(태조 1) 도교 사원은 소격전(昭格殿)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했는데, 복원궁도 이 때 함께 없어졌다.
을 비롯한 도관들의 폐쇄로 나타난다. 10개 미만이었던 도관들이 소격전(昭格殿)만을 제외하고 모두 페쇄된다. 소격전은 지금은 물론 없지만 우리에게 그 이름만으로라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현재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앞에는 프랑스문화원이나 국군병원 등이 있는데 그 동네의 이름이 소격동이다. 동 이름이 이렇게 된 것은 아마도 조선조 때 소격전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격전은 후에 소격서라는 ‘전’ ‘대웅전’이나 ‘근정전’의 경우처럼 성인이나 임금을 모신 건물에만 ‘전’이라는 글자를 사용할 수 있었다.
보다 한 단계 낮은 단계로 강등되어 이름이 바뀐다. 성현을 모신 ‘전’ 에서 일개 부서 정도로 강등된 것이다.
그러나 중종 대가 되어 정암 조광조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나마 있던 소격서마저 혁파당하게 된다. 성리학으로 질서가 잡힌 완전무결한 나라를 꿈꾸던 조광조에게 도교라는 종교사원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임금인 중종은 예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니 소격서를 그냥 내버려두자는 입장이었으나 정암이 잠도 안 자면서 하도 성가시게하여 결국 승낙하고 만다. 그러나 조광조가 사화로 정권에서 물러나자 소격서는 다시 문을 열게 되지만 한참 후 임진왜란 때 병란을 겪고 건물이 소실되면서 소격서는 두 번 다시 문을 열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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