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시원가와 화엄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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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보현시원가와 화엄사상
1. 보현시원가
2. 화엄사상
3. 보현시원가에 나타난 화엄사상
4. 결론
1. 보현시원가
고려 광종 연간에 균여(均如)가 지은 향가이며 보현십종원왕가(普賢十種願往歌)·원왕가(願往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원왕가(願王歌)’만이 ≪균여전≫의 문헌 명칭이고, 나머지는 ≪균여전≫의 ‘보현십종원왕에 의거하여 노래 11장을 지었다(依普賢十種願王 著歌十一章)’는 기록에 의한 후대의 명명이다.
작품은 고려대장경 보판(補板) ≪석화엄교분기원통초 釋華嚴敎分記圓通抄≫ 권10 끝에 부록으로 실린 <대화엄수좌원통양중대사균여전병서 大華嚴首座圓通兩重大師均如傳序>의 제7 가행화세분(歌行化世分)에 향찰로 표기되어 전한다.
창작연대는 963∼967년 사이로 여러 설이 있다. 균여는 ≪균여전≫에 인용된 글에서 ≪화엄경≫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의 어려운 종취(宗趣)를 향가를 빌려 중생을 교화하고자 한다고 창작동기를 밝히고 있다. 전체 11수로 되어 있으며, 각 수 모두가 11분절로 띄어져 있다. 10구체로 보는 것이 통설이나, 그 띄어쓰기를 존중하여 11구체라 주장하는 학설도 있다.
형식상 매우 정연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는데, 제1구는 매우 짧으며, 제9구 앞에는 감탄사를 수반하는 것이 특성이다. 각 작품 모두가 의미단위로는 세 단락이다. 이들 세 단락을 이루는 구수(句數)는 4구 또는 2구이며, 작품은 4·4·2의 구수로 구성되어 있다. 이 4·4·2의 3단위는 ≪균여전≫에서 <원왕가> 또는 향가의 형식을 말해 주는 3구육명(三句六名)의 3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며, 6명의 해석에는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지만, 3구6명의 구와 명은 불경에서 이야기하는 명구문(名句文)의 명과 구라는 데는 거의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작품의 표기상 한자어가 많이 보이는데, 언어의 표기에서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과 어간에는 한문을 주로 쓰고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어미에는 향찰을 주로 쓰고 있다. 이 노래는 병든 자가 암송하여 병이 나았고 사람들의 입으로 전파되어 담벼락에 종종 쓰였다는 〈균여전〉의 기록으로 보아 주력과 신이한 영험을 지녔던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균여와 같은 시대 사람이며 그의 〈원왕가〉를 한문으로 번역한 최행귀는 균여의 향가를 중국의 사부를 능가하는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송나라의 군신들에게까지 전파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그들은 균여를 일컬어 "진실로 한 부처가 세상에 오신것"이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2. 화엄사상
우리나라에 화엄종이 도입된 것은 신라시대로, 신라 통일 직전 의상(義湘, 625~702)이 661년 당나라 종남산에 가서 화엄종의 시조인 지엄(智儼)으로부터 화엄학을 배우고 문무왕 10년(670)에 귀국하여 영주에 부석사를 창건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계속 내려와 고려 광종대에 와서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였다. 이를 위해 광종은 균여를 개성의 귀법사 주지로 임명하여 화엄종의 재확립을 지향하였다.
화엄사상은 모든 우주만물이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조화하고 포용하는 관계를 가졌다는 주장, 즉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는 논리를 펴냈다. 즉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하나라는 것으로 일체불리(一體不離)라고도 한다.
보현시원가와 관련하여서는 화엄사상의 <보현행원품>과 관련이 깊다. <보현행원품>은 화엄경에 수록된 보현보살의 행원을 기록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이를 《화엄경》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책으로 간행, 유포하였다. 내용은 부처의 공덕을 성취하고자 하면 보현보살의 10대원을 닦아야 함을 밝힌 것이다. 먼저 10대원을 밝히고 이것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구분하여 적고 있다. 본문에 이어서 보현보살이 본문의 뜻을 요약하여 읊은 게송을 수록하였다. 고려의 균여(均如)는 이 책을 근거로 《보현십종원왕가(普賢十種願往歌)》를 지어 유포하였다.
◎ 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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