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케플러와 그의 연구 과정에서 나타난 hunch에 대한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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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케플러와 그의 연구 과정에서 나타난 hunch에 대한 재평가
Ⅰ. 서론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과학혁명을 주도적으로 이끈 수많은 과학자들 가운데 그 혁혁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인물을 한 번 들어 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케플러의 업적이 천문학 분야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를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나 뉴턴(Newton Issac, 1642~1727)과 같이 현대 물리학의 초석을 쌓은 위대한 과학자들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행성의 궤도 운동을 일으키는 운동 원인이 행성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으로부터 나온다.’는 그의 생각이 뉴턴의 만류인력 법칙 발견에 기초가 되었고, ‘행성이 타원 궤도를 이루며 공전 운동을 한다.’는 발상과 ‘천상계의 운동에도 지상계와 동일한 역학이 적용됨’을 밝혀 낸 그의 업적이 1500년 이상 동안 유럽을 지배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타파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는 점 등을 생각한다면 과학혁명의 완성 과정에서 그의 공로는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소위 조화의 법칙이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제 3법칙은 현대에 와서도 인공위성이나 우주 왕복선 등을 쏘아 올리는 과정에서 행성의 궤도를 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과학 혁명 전반과 현대 우주 과학의 발전에 그의 연구가 미친 중요한 영향들을 이해하고 나면 왜 그가 갈릴레오나 뉴턴처럼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조차 부족한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그의 연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과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제 3법칙이 과학인지 아니면 수점술(數占術)의 일종인지” 버나드 코헨, 『새 물리학의 태동』, (한승, 1996) p.164
를 반문하는 갈릴레오의 태도나 그의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는 뉴턴의 이야기, 그리고 그에 대한 논문들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천체를 대하는 비합리적이다 못해 신비주의적이기까지 한-그의 태도에 대한 희화화 내지는 비판의 경향은 이러한 우리의 생각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의 연구 과정과 결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를 과연 과학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비과학적인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연구 가운데 상당 부분은 우리가 흔히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바와 같이 충분한 자료 수집과 실험의 결과로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충분한 자료들을 특별한 근거가 없어 보이는 -그러나 그 자신은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물리학적 가설들-hunch-에 따라 해석, 종합, 확장함으로써 이를 정당화하거나 때로는 과학적인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hunch 그 자체를 결론으로서 믿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케플러는 그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의 연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과학성으로 인하여 갈릴레오나 뉴턴에 비하여 계속해서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의 연구 과정이 당대나 과학사에서 비판받았던 것처럼 과연 그렇게 비과학적인가 하는 의문을 먼저 제기하고 싶다. 이러한 의문은 ‘과연 과학이란 무엇인가?’내지는 ‘올바른 과학 연구의 방법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좀 더 철학적인 질문을 전제하고 있다. 그가 살았던 17세기의 상황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상적 철학적 배경을 고려할 때, 그의 hunch에 대한 집착은 상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배경을 무시한 채 근대의 과도한 합리성에 대한 요구를 그에게도 일방적으로 적용시킴으로서 그를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가 천체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티코 브라헤(Tycho Brahe)로부터 물려받은 화성에 관한 관측 자료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흔히 비판받는 것처럼 과연 그렇게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더욱이 그의 hunch들이 고대와 중세의 천체관으로부터 근대적 천체관으로의 패러다임의 일대 변혁을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도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hunch로부터 출발하여 결론을 유도해 나가는 그의 연구 방법이 오히려 현대 물리학에서는 상당부분 과학적 방법으로서 용인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내용들에 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통해 케플러의 연구에 있어서 hunch의 의미와 그 현대적 의의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hunch의 개념과 사상적 배경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hunch의 정확한 개념부터 짚어보고자 한다. hunch는 우리나라 말로는 예감, 육감으로 번역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함의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hunch는 사전적으로 “a feeling that something is true or that something is happening, even though you have very little information about it ”라고 정의된다.. Summers, Della, 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 Vol. 3, ((주)범문사, 1995) p. 895
이를 직역하면 ‘그것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것이 사실이라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석된다. 이를 약간 변형하여 지금부터는 hunch를 ‘충분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자 자신의 직감으로부터 설정된 과학적 가설’이라 정의하고 이 개념을 전제로 논의를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다.
케플러 역시 한 시대의 사회적, 사상적 흐름 가운데에서 땅에 발을 딛고 살았던 사람이었으므로, 당시의 사상적 조류의 영향을 벗어나기는 힘들었을것임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유럽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던 중요한 사상으로 우리는 헤르메티시즘과 신플라톤주의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케플러의 hunch 역시 이러한 사상들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은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능력을 통해 물리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우주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을 볼 때, 그가 신학의 영향도 크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케플러의 hunch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연구 과정에서 hunch가 실제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보기에 앞서 그것이 어떠한 사상적 배경 하에서 나타난 것인지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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