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의 내적인 구조가 지닌 미와 재현의 이상과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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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내적인 구조가 지닌 미와 재현의 이상과의 상관관계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름다움이 조화나 질서, 균형 등에 있다고 보았고 중세에도 이와 비슷하게 아름다움의 원리를 완전성과 조화에서 찾았다. 이와 같은 고전적인 미의 기준과 달리 근대에 와서는 미를 변하지 않는 형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기도 하지만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성질도 포함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칸트에게서 기인한다. 고대인에게 미는 이데아의 현상적 현현이었다. 천사나 신과 같은 형이상학적 존재, 나무나 풀과 같은 물질적 존재가 존재하는 것처럼 미도 주체와는 별도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혹은 미는 객관적 존재자이거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자의 속성이기도 했다. 그 예로 흔히 우리는 황금분할(1:1.618)이나 비너스의 팔등신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미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의 판단이나 정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즉, 칸트에게 있어서 ‘미’란 존재자의 성질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떤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고대인이 ‘미’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것을 보고 쾌감을 느낀다고 여겼다면 근대인은 쾌감을 주기 때문에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칸트가 미의 분석을 ‘취미판단’ 분석으로 전환하면서 미에 대한 인식은 이렇듯 극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미가 객관적 존재자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자 부엌쓰레기를 뜻하는 키치(kitsch)가 사람들의 미적 취향의 한 형태로 인식되기도 했고, 기괴하고 흉측한 형태의 조각상을 본 후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른 미적 기준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술 활동은 무한한 에너지를 추동 받게 되었다. 어쩌면 주관적 미의식이 객관적 미의식보다 우선시되면서 추, 그로테스크, 숭고, 추상 등의 개념이 고전적 아름다움의 개념을 전복시키거나 대체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적 아름다움에 속하지 않는 요소들이 구현된 작품 속에서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취미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힘을 실어주었고 현대 예술이 존재하는 기반이 되었다.
아름다움은 크게 즉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계가 주는 가시적인 영역과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눈에 바로 들어오는 세계와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서는 오롯이 느낄 수 없는 불가시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가시적인 것은 대부분 물질적이며 자연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의 감상은 가시적인 감각적 현상을 목격하는 주체의 인식 체계나 주관적 심상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각적 현상 자체가 때로는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노인의 주름진 손은 늙음과 쇠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름다움보다는 추에 가깝지만 인생과 삶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자체로 아름답다. 또한 비오는 풍경은 때로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지만 매일같이 그 비를 바라보는 사람의 경우에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듯 가시적인 영역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상황과 조건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항상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것은 주로 심리적 상태와 관련이 깊어서 같은 것을 보고도 늘 똑같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 인간의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 현상 너머, 물질의 표면 안에 있는 아름다움은 항상성을 지니고 있고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심미안을 습득하기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왜냐면 표면을 가리고 있는 현상의 껍데기를 깨트리고 들어가 그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과 달리 예술 작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표면 안의 것들을 드러내는 인위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예술 작품에서의 내적 구조는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능력과 그것을 완상할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건축물의 구조를 보기 위해서는 그 겉모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시간을 들이고 내부에 들어가서 미로와 같은 구조를 느껴보아야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바로크 음악의 모든 형식을 총망라한 대작이라고 평가되는 J.S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곡의 길이가 상당한 만큼 첫 소절만 듣고서 그 곡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느낄 수 없다. 바로크 종교 음악과 세속의 음악을 종합하여 다룬 만큼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경과 같은 그 음악의 내부 구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홍준의 언술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폐허가 된 통일 신라 시대 사찰의 당간지주는 단순히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돌덩어리일 뿐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는 굉장히 위험한 사상이기도 하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 그 상황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유적 혹은 작품은 그 의미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다는 ‘지적 우월주의’ 혹은 ‘지식 권력주의’의 위험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유홍준의 생각은 위험하지만 예술 작품의 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명 어느 정도는 필요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유홍준의 생각은 하이데거의 예술에 대한 사유와는 다르다. 물론 존재자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 예술작품을 바라보면 그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고 비아냥대던 데리다의 생각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작품이라는 존재자를 대하는 관객에게 심미적이면서 미학적인 관점이 형성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는 하이데거적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대하는 대다수 관객들은 그런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에 신 앞에 선 단독자처럼 예술작품 앞에 막연히 서 있다고 해서 예술 작품이 말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하이데거가 말하는 것이 옳다면 우리가 대학이나 예술기관에서 수강하는 수많은 예술론 관련 강의는 모두 다 쓸 데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예술작품의 내적인 아름다움, 나는 그 아름다움이 구조 속에 내재한다고 믿으며 그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노력과 지식 그로인해 가지게 될 심미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가시적 차원의 영역 안에 머물고 있는 작품의 내적 구조가 예술작품이 가진 아름다움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아름다운 내적 구조를 갖춘 것이 훌륭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인 “예술에서의 내적구조”는 심리적 상태와 감정에 영향을 받는 가시적이며 현상적인 아름다움과 달리 상황과 조건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 감상해도 아름다우며 그 구조에 대해 깊이 느낄수록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그래서 그것들이 결국은 나에게 단순히 아름다움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감정들까지 심어준다. 그것은 꽃, 파란 하늘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구조를 통해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 그것은 마치 바넷 뉴먼의 그림을 보는 관객이 느끼는 압도적 위압감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가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조차 그 대상에 대한 정의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드는 아름다움이며, 이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거대한 수학적 숭고의 예술미학적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내적 구조의 위대함을 정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작품의 구조 즉 음악적 구조나 영화적 구조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말로써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를 느끼게 할 만큼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예술작품의 내적구조는 감정이나 심리적 상태에서 파생된다기보다는 이성에 의해서 산출되는 것이지만 단지 이성의 작용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성의 작용에 가깝지만 감정과 이성의 협업 혹은 그 너머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에 예술작품의 구조를 접했을 때 우리는 감성으로써 파악한 후, 이성으로써 구조화되어있는 아름다움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작품의 구조는 감성과 이성이 조화되어있는 아름다움이다. 예를 들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통해서 처음에 그 음표 하나하나를 느끼고 다음으로 그 음표들이 늘어놓는 음의 하모니를 감각하며 곡 전체를 다 듣는 긴 시간동안 자신도 모르게 엮어 놓은 그 구조들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의 구조 역시 쇼트들 각각의 즉물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고 그런 것들이 모여서 총체적으로 구조화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작은 구조가 큰 구조를 만드는 밑바탕이 되고 이것들이 또 총체적인 거대한 하나의 구조를 형성하는 순간 우리는 내적인 구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예술이 가지는 내적 구조, 즉 형식미이며 이는 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예술은 내용 그 자체보다 내용이 표현되는 구조가 핵심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형식이 가진 힘은 1980년대 후반 발표된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그 앨범은 2007년 음악 평론가와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앨범 중에 역대 2위를 차지한 명반이다. 앨범 타이틀곡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발표 초기에는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왜냐면 이 노래는 2 년 전 이미 조용필이 먼저 발표한 노래의 리메이크로 알려졌고, 당시의 음악 트렌드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의 창법과 구성은 조용필의 그것과 너무 달랐다. 같은 음표들로 구성된 멜로디와 리듬을 가지고 있지만 유재하가 불렀던 노래의 형식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당시 막 도입되었던 전자 음악의 세계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웅장한 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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