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제국주의적 세기 189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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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국의 제국주의적 세기, 1895-1914
1839-42 제 1차 아편전쟁
1846 곡물법 폐지
1849 항해법 폐지
1856-60 제 2차 아편전쟁
1869 수에즈 운하 개통
1876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여제가 됨
1882 영국의 이집트 점령
1884-85 베를린회의
1902 J.A. 홉슨의 <<제국주의 연구>> 출간
1815년에서 1914년까지의 기간은 영국의 ‘제국주의적 세기’였다고 인식되어 왔다. 특히 19세기 마지막 4분기에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영국의 영토가 극적으로 확장되었다. 이 기간이 제국 열강으로서의 영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국면이었다. 역사가들의 관심은 영국의 공식적 지배 밖에 있으면서도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지역에 모아졌다. 몇몇 학자들은 광대한 ‘비공식적 제국’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한다.
자유무역 제국주의
일반적으로 1950년대까지는, 19세기 중반은 제국에 무관심한 시대로 인식 되었다. 제국에 대한 무관심은 자유무역의 발흥과 구중상주의의 쇠퇴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국 농업에 관세 보호를 제공했던 곡물법이 1846년 폐지되었다. 3년 후 보호무역 체제를 지탱해 온 항해법도 폐지되었다. 자유무역 도입의 실제적인 결과는 수입 관세의 폐지, 식민지 특혜의 폐지, 그리고 해운 제한의 폐지였다.
1953년 존 갤러거와 로널드 로빈슨은 논문 <자유무역 제국주의>를 발표했다. 저자는 자유무역이 반(反)제국주의 시대임을 표시한다는 관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빅토리아 중기는 영국의 해외 팽창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단계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해석을 정당화한다. 우선 그들은 자유 무역이 진행된 빅토리아 중기 동안에 영국의 공식적 영토가 확장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시아에서 오우드ㆍ 하(下)미얀마ㆍ주릉, 아프리카 남부의 바수톨란드[레소토]와 그리퀼랜드, 그리고 서아프리카에서 라고스와 시에라리온 인근 지역 등이 영국의 식민지로 통합되었다. 둘째, 그들은 영국의 직접통치 아래에 있는 영토만을 제국으로서 간주 하는 것은 “수면 윗부분만으로 빙산의 크기와 성격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비공식적 제국은 영국의 팽창하는 경제에 새로운 지역들을 통합함으로써 생겨났다. 일단 라틴 아메리카와 중국 그리고 발칸 국가들에 강제로 밀고 들어간 다음에, 투자 위험이 적게끔 안정적인 정부를 조성하는 게 과제이다. 1820년대에 영국이 라틴 아메리카 신생 공화국들의 독립을 승인한 것은, 에스파냐의 무역 독점을 파괴하여 비공식적 패권을 획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갤러거와 로빈슨은 “자유 무역제국의 정책에 대한 통상적인 요약인 ‘지배하지 말고 무역하라’는 말은, ‘가능하면 비공식적 통제를 통해 무역하라. 필요하면 지배하여 무역하라’는 말로 해석한다.”
갤러거와 로빈슨은 제국주의를 “팽창하는 경제에 새로운 지역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의 ‘정치적 기능’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비공식적 제국으로서 규정된 지역들을 영국이 경제적으로 포섭하는 과정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영국이 경제적 지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그와 같은 명백한 사실은, 빅토리아 중기에 비공식적 제국이 과연 존재했는지 의문을 던지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비공식적 제국이라는 개념은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에 더욱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 갤러거와 로빈슨은 빅토리아 중기에 영국의 비공식적 제국의 범위를 과대 평가했다.
또한 A.G. 홉킨스과 P.J. 케인은 라틴아메리카에 초점을 맞추어, 영국 자본이 이 지역에 수령자로서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실증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영국의 자본은 1865년 8천1백만 파운드에 지나지 않던 것이 1913년에는 11억 8천만 파운드로 영국의 해외 투자에서 25퍼센트에 이르는 수치에 도달했다. 아르헨티나에만 라틴아메리카투자의 41퍼센트가 집중되었다. 케인과 홉킨스는 아르헨티나를 캐나다 및 오스트레일리아와 동일시하며 ‘명예
자치령‘이라고 묘사했다. 보다 일반적인 측면에서 케인과 홉킨스는, “영국의 팽창하는 금융이 미국과 유럽에서 영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감소한 바를 보상하는 세계적 규모의 ‘보이지 않는 제국’을 창조한 것은 19세기 후반부, 특히 1870년 이후”였다고 주장한다. 케인과 홉킨스는 자본 수출과 영국의 해외 팽창 사이의 관련을 입증하기 위하여 20세기 초의 연구자들의 저술에 의존했다.
경제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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