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미술과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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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미술과 건축
이 시대의 미술가들은 앞선 한 세기 반 동안에 이루어진 두드러진 발전 덕분에 높은 기술적 수준을 누렸다. 그들은 또한 후원자들로부터 격려와 물질적 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그 후원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그들의 취향을 세련시키고 그들의 미적 안목을 높여 주었던 오랜 문화적 전통을 물려받고 있었다. 메디치 시대의 이탈리아는 바르디와 페루치 시대 시대의 이탈리아만큼 번영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전성기 르네상스는 여러 차례에 걸친 외세의 침략에 뒤이은 재앙들의 한가운데에서 절정에 달했다. 아직 미술을 후원하기에 충분할 만큼 막대한 부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그 결과들에서 분명히 나타나며, 그러한 부 가운데 많은 부분이 활기차게 팽창하고 있던 경제의 결실이기 보다는 물려받은 유산이었기 때문에 그 부는 정신과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들에 소비될 가능성이 더 컸다. 로디 화약 이후에 나타난 영역국가의 성장과 정치 상황의 안정 역시 징세를 바탕으로 한 전례 없는 부를 교황을 비롯한 몇몇 이탈리아 군주들의 손아귀에 집중시켰고, 그들의 궁정을 아낌없는 후원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이 시대의 후원자들은 교회 및 예배당을 장식하는 데에만 전적으로 관심을 쏟지는 않았다. 물론 여전히 종교 미술이 아주 많았지만, 미술을 더 이상 신앙에 봉사함으로써 정당화될 필요가 없이, 그 자체로서 평가될 수 있었다. 이제는 점점 더 큰 정도로 후원이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미술 작품들을 수집하는 애호가들로부터 나왔고, 그리하여 그림과 조각품들은 군주의 궁정과 개인 저택, 그리고 부유한 시민들의 별장 속에 있게 되었다. 그 같은 후원 아래에서 세속적인 주제가 차지하는 비율이 두드러지게 증가하였다. 초상화가 전례 없이 번창하였고, 고대에 대한 존중에 깊이 빠져들어 있던 시대에 예상될 수 있듯이 고전 신화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장면들이 성경이나 《황금 전설》로부터 끌어낸 장면들과 어깨를 겨누기 시작하였다.
화가들은 건축가로부터 원근법을 배웠고, 건축의 실제는 화가들 사이에 알베르티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로부터 레오나르도에 이르는 그 시대의 모든 이론가들이 그들의 직업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던 수학 및 기하학의 지식을 지속적으로 발달시켜 주었다. 거의 마찬가지 방식으로 조각의 실제는 해부학에 관한 화가들의 관심을 높여 주었고, 그에 따라 15세기 후반에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화가들이 인체에 대해 쉽게 정통할 수 있도록 토대가 놓여졌다.
과학적인 해부학 연구의 가치는 특히 나체의 묘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며, 사실상 나체는 고전 고대 이래로 바로 이 시대에 최초로 그 자체로서 미술을 위한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회화에서 나체상이 점점 더 널리 확산된 것을 해부학에 관한 미술가들의 과학적 관심으로만 설명할 수 는 없다. 그것은 또한, 완전히 입체적이고 3차원적인 형상의 감각적인 효과들을 회화에서 표현해내려는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오랜 노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동시에 미술에서의 나체상 출현은 육신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육신에 대한 금욕주의적인 불신은 점점 더 세속화되고 있던 사회에서 그 힘을 잃어갔고, 인간의 타락에 대한 신학자들의 확신은 인간의 위엄성이라는 인문주의자들의 관념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세기 초에 도나텔로의 조각에서 분명히 드러났으나, 이제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영혼을 일깨워 점점 더 보다 정신적인 형태의 아름다움에 대해 명상케 하고 성스러운 진리(the Divine Truth)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깨닫게 만든다는 신 플라톤 철학이 그 변화를 더욱 뒷받침해 주었다. 이 관념은 미켈란젤로가 오로지 나체상에만 매달린 것에서 가장 완벽하게 표출되었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 1444~1510)는 이교적인 주제와 기독교적 주제 모두에 꿈같은 주관적인 매력과 우아하게 비틀린 곡선의 느낌을 주었고, 그로써 그는 지오토 및 마사치오와 정반대에 위치하게 된다. 메디치 가문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서, 그는 “비너스의 탄생(Birth of Venus)"을 그렸으나, 그의 비너스는 그의 마돈나 그림들과 같은 처녀의 순결함과 생각에 잠긴 듯한 슬픈 표정을 거의 다름없이 묘사한다. 뒷날 그는 사보나롤라(Savonarola)의 설교에 푹 빠져들어 이교적인 주제들을 탈피했으나, 그의 미술을 후기 고딕의 전통이 부활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은 그의 종교적인 감성이라기보다는 그의 흐르는 듯이 율동하는 선들이었다.
15세기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곧 두려운 현실로 다가올 외세 침략의 위협이 짙게 드리워진 가운데, 이탈리아 회화는 백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그토록 막대한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던 원동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프랑스가 1498년에 두 번째로 침략해오기 앞서 십년 동안 폴라이울로(Pollaiulo)와 베로치오, 기를란다이오, 그리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세상을 떠났다. 보티첼리와 만테냐는 절정기를 지나 내리막길에 있었으며, 중부 이탈리아에 남아 있던 가장 인기 높은 화가들은 영감이 없는 프레스코 그림들로 벽들을 뒤덮고 있던 페루지노, 핀투리치오, 필리피노 리피(Filippino Lippi) 같은 장식적인 이야기의 화가들이었다. 피렌체 사람인 레오나르도는 지난 열여섯해 동안 밀라노에 있는 루도비코 일 모로(Ludovico Il Moro)의 궁정에서 일해 오면서 15세기의 대표자이기보다는 다가오는 시대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미술은 기본적으로 위대한 세 거장인 레오나르도와 라파엘과 미케란젤로의 업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 사람은 각각 개성과 스타일이 매우 달라 일반화 될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두세기 앞서 지오토로부터 시작되었던 오랜 발전 과정의 마지막 결실을 이루고 있으며 그 결실을 맺은 뒤에는 모방자는 얻을 수 있었으나, 계승자는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모두 공통된다. 더구나 그들 각각은 15세기로부터 물려받은 형태 묘사의 기법을 완벽하게 구사하여, 이상적인 형상들을 창조해냈다. 조화와 균형을 완성시킨 점에서 뿐만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도 그들의 미술은 고전 미술이었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세 거장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 1452~1519)는 아주 적은 수의 작품만을 완성하였지만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크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음악가, 기술자, 발명가, 그리고 경험 과학자를 동시에 겸하였다. 그의 머리 속은 실제로 열매를 맺은 것은 거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은 계획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맹렬한 정신활동 가운데 대부분은 자연에 대한 그의 관찰들과 과학적인 이론들 그리고 그가 발명한 기계들을 자세히 보여 주는 그림으로 가득 메워져 있는 그의 공책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의 가장 커다란 그림인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새로운 프레스코기법 제작과정은 회반죽으로 미리 벽에 초벌질을 하고, 그 위에 시노피아(sinopia)라고 하는 실제치수의 소묘를 그린다. 시노피아를 그릴 수 없는 경우에는 인토나코(intonaco) 다음에 스폴베로(spolvero)나 카르퉁(판지) 방법을 쓴다. 채색할 때에는 아침에 완성 가능한 예정부분(조르나타:giornata)에만 마무리칠의 회반죽을 칠한다. 이어 내(耐)알칼리성 토성안료를 물에 개어 그림을 그린다. 정해진 시간에 조르나타가 다 채워질 수 없을 때에는 말라버리므로 그 부분의 회반죽을 긁어내고 다시 인토나코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정이 불가능하므로 숙련을 필요로 하는 기법이다.
의 인물 배치와 운동감 그리고 개개인물의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겉 몸짓으로만 보아서도 그 그림은 위대한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명암의 배합에서뿐만 아니라 이 온갖 측면들에서도 마사치오가 "공물(the Tribute Money)"에서 시도했던 모든 것을 완성시킨 결실이라고 여겨진다. 그가 사용한 명암법은 "바위산의 성처녀(Virgin of the Rocks)"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거기에서는 표면 위로 흘러가고 경계선에서 그늘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빛의 연출이 15세기의 멀리 있는 물체를 뿌옇게 처리하는 방법의 사용을 통해 먼 풍경의 묘사에 농담 원근법의 새로운 요소가 보태지고 있다.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라파엘 산치오(Raphael Sanzio : 1483~1520)는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였고, 겉보기에는 전혀 애도 쓰지 않고 쉽게 작업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사실상 르네상스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서, 그 시대의 기술적 성취들은 그에게서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한 최고로 완벽한 경지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움브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페루지노의 작업장에서 일찍이 수업을 받은 덕분에, 라파엘은 공간 구성에 대한 감각을 얻었고, 그 감각은 그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들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되었다. 청년 시절에 그는 피렌체를 방문하여, 그것에서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전혀 모방함이 없이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아주 다양한 본보기들로부터 배움을 얻고, 그가 배운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의 침착한 기질과 아름다움에 관한 관점 그리고 조화롭게 통합된 구성에 대한 그의 감각이 뚜렷이 새겨진 종합 속으로 융해시켜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라파엘에게 만의 특유한 재능이었다. 그의 수많은 마돈나 그림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그대로 남을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으며, 바티칸에 있는 서명실 벽면에 그린 커다란 프레스코 그림들, 특히 “아테네의 학교(School of Athens)"와 "논쟁(Disputa)"에서 그는 그 시대의 가장 웅장한 인물 집단의 구성을 창조해냈고,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에 대한 형상적 관념을 결정지었다. 그의 경력은 대단히 화려했지만, 그만큼 매우 짧았다. 많은 명예와 위촉을 받고, 1514년에 브라만테가 죽은 뒤에 성 베드로 성당의 우두머리 건축가로 임명된 그는, 37살에 죽음을 맞이했을 당시 이미 그의 그림들을 위한 실제 작업 대부분은 제자와 조수들에게 맡겨야 했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세 번째 거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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