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동대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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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동대문
2. 동대문에 얽힌 옛이야기
본문내용
서울 종로에 위치한 동대문은 보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 중층(重層)의 우진각지붕. 통칭 동대문이라고 한다. 서울 성곽은 옛날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으로, 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정동(正東)에 있으며 원래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1396년(태조 5)에 건립되고 1453년(단종 1)에 중수되었으며, 1869년(고종 6)에 이르러 이를 전적으로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화강암의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虹朗門)을 축조하고 그 위에 중층의 문루를 세웠으며 문 밖으로는 반달 모양의 옹성(壅城)을 둘리고 있으나 이것도 1869년(고종 6)에 다시 개축한 것이다. 문루의 아래층은 주위 4면을 모두 개방하였으나 위층은 기둥 사이를 모두 창문과 같이 네모나게 구획하여 각각 한 짝 열개의 판문(板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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