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자서전을 읽고서는 그 당시 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탓에 별 감흥이 없었다. 특히, 읽기 전에는 모택동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던 터라 그냥 평범한 사람의 수필을 읽듯이 읽었는데 모택동 자서전의 측량할 수 없는 역사적 가치가 나에게 아무런 가치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실은, 느꼈다기 보다는 많은 배울 점을 찾았다고 하는게 맞을 수도 있다.
모택동은 아주 어렸던 시절의 집안의 경지면적, 수확곡식량, 소비곡식량, 축척량 등 집안사정을 아주 잘 알았던 것으로 보아 어렸을 때부터 철이 좀 들었던 것 같다. 훈장 선생님이 너무 엄하셔서 학생들을 자주 때리곤 했기 때문에 모택동은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수업거부로 인해 ‘아버지가 나를 이해해주었고, 훈장 선생님도 전 보다는 온화하게 대해 주었다’ 라고 했는데 이 ‘승리’는 모택동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그의 신념에 맞는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그의 실천정신의 최초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이후로 모택동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은 계속된다.
모택동 자서전을 읽고,모택동 자서전의 배경역사지식이 없던 나는 모택동자서전을 읽기 전에 중국문화대혁명이 라는 책을 먼저 읽었다. 이 책은 문화대혁명부터 4인방의 재판까지의 역사를 다큐멘터리식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읽기 쉽고 내용정리가 잘 되어 있어 이해가 잘 되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모택동자서전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번에 무엇보다 중국근대사에 대해 대충이나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예전엔 전혀 감이 안 잡히던
을 시작했던 곳도 천안문광장 이었으며 이 운동을 발판으로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기 시작해 1949년 10월 1일 긴 혼란 후,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한 곳도 이곳이다. 1000년의 긴 역사만큼 아주 많은 명승고적들이 있으며, 성구를 중심을 이루는 자금성은 현재 박물관이 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인구는 상해보다 적고 삶의 질이나 도시의 번화함에서는 광주보다 떨어지지만 한 나라의 수도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북경에는 밀려오
을법한 귀 여니 소설. 원래 인터넷에서 오가던 한편의 인터넷 소설이 수많은 인기를 얻어 책으로 발간되고 이어서 영화까지 만들어졌던 그 귀 여니 소설 말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교과서 뒤에 받쳐 읽으며 서럽게 울었었다. 주인공이 죽는 슬픈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설은 너무나도 공감대를 형성하여 그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무척 광펜 이었었다. 그러던 나는 자서전을 읽고 서평을 써오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난 그때부터 고민했다. 어떤 책을
공부도둑을 읽고나서 - 배움의 즐거움과 성공의 상관관계책에대한 감상공부도둑을 읽고나서 느낀점과 감상을 정리해 보았다. 공부도둑. 자신의 발자취를 앎을 추구하며 배워온 과정이라 말하는 저자 장회익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과 한국에서 물리학과을 공부하고 자기 나름의 사상적 이론을 적립한 과학자이자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평생 자신이 취한것은 앎과의 숨박꼭질이자 그런 앎을 위해 즐겁게 즐기면서 함께해온 놀이라고 이
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부족한 점이나 평소에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인간성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한 작업은 물론 스스로의 지나온 삶에 대한 뿌듯함이나 위안을 주기보다는 따가운 자기반성과 후회를 수반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프란츠파농(Frantz Fanon, 1925-1961)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껴지는 자기반성의 관점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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