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시가론] 김천택의 시조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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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대 배경과 김천택의 생애

2. 김천택의 작품세계 주요 경향 및 특징

3. 김천택 시조에 드러난 작가의식

4. 김천택 시조의 시가사적 의의

* 참고문헌
본문내용
2. 김천택의 작품세계 주요 경향 및 특징

김천택의 작품에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18세기 초반 여항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신분적·사회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분의 문제에서 비롯된 현실 세계와의 갈등이 자연으로의 지향, 사대부와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태도 등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김천택 작품의 일반적 경향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는 힘든 측면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두 갈래의 경향을 보인다. 첫째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고뇌의 표출이다. 문헌의 기록을 살펴보면 김천택의 신분은 포교(捕校)로 짐작된다. 포교는 하급 무관이었고, 따라서 그의 마음 한 편에는 무관으로 출세하고자 하는 포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포부와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제의 모순 때문에 출셋길이 막힌 현실은, 그에게 더욱 큰 좌절과 모멸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대부 시조 등에서 관습화되었던 상징물(예를 들어 천리마)을 자신의 나름으로 변용하여 신분 갈등 표출의 매개물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의 시도를 보였다.

이러한 좌절감, 갈등의 표출 의식은 두 가지의 갈래로 나타난다. 하나는 ‘술’에 대한 시이다. 김천택의 작품에서는 유달리 ‘술’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 많아서 15수 정도나 된다고 한다. 술은 일종의 체념의 상징물로, 취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그의 고뇌를 잘 드러내 준다. 여항인들에게 있어서 술 마시기는 흥취의 행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 자신의 서정시에는 물론이고, 사대부들 앞에서 불러야 했던 풍류와 취락의 노래에서도 현실 도피적 성향, 혹은 功名과 名利 배제의 성향은 여실히 들어난다. 또 하나는 자연에의 몰입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사대부 강호가도의 모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표현이 관습적일 뿐, 내면의 정서는 많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자연에 몰입하게 된 이유는, 현실세계의 좌절 때문이고, 따라서 그런 현실과 대립항인 자연을 지향함으로써 그것을 대리 만족했고 소외감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 세계의 두 번째 갈래는, 많은 선학들이 지적했듯이 사대부 문학의 모방 혹은 사대부 취향에 맞춘 작품 활동이다. 김천택은 사대부들의 기호에 맞춘 시조를 창작하고 가창하여야 하는 상황에 있기도 했다. 위항 시인은 양반사대부들의 경제적 기반에 기생함으로써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가객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사대부 문학에서의 관습
참고문헌
* 참고문헌

『古時調論』, 최동원, 삼영사, 1980
「'閭巷六人'의 作品世界와 18세기 초 時調史의 일국면」,
김용찬, 시조학논총 12, 1996
『18세기의 시조문학과 예술사적 위상』, 김용찬,
월인, 1999
「김천택의 삶과 작품세계」, 김용찬, 『어문논집』39,
사림어문학회, 1999
「김천택 시조에 나타난 갈등 양상」, 류현재, 『사림
어문연구』 12, 1999
『한국 고전시가 문학의 분석과 탐색』, 나정순, 역락,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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