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의 이슈]이승만 정권시기의 정당들과 중심인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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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자유당과 중심인물들(대표적 우익성향을 지닌 보수단체)

2.조선민족청년당의 창당과 중심인물(이범석을 중심으로 조직된 우익성향의 단체)

3.한국민주당의 창당과 중심인물(민족주의 보수세력이 집결하여 창당한 정당)-우익성향

4.한국독립당의 창당과 중심인물(민족주의 보수단체)-우익성향

5.조선공산당의 창당과 중심인물(박헌영을 중심으로한 대표적 좌익단체)-좌익성향

6.조선인민당의 창당과 중심인물(8·15광복 직후 여운형(呂運亨)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중도좌파 정당.)


본문내용
6.조선인민당의 창당과 중심인물(8·15광복 직후 여운형(呂運亨)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중도좌파 정당.)

창당배경과 성격: 1945년 11월 12일 여운형이 고려국민동맹·인민동지회·일오회 등 군소정파들을 흡수하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직을 모체로 하여 창당하였다. 위원장은 여운형이 맡고, 부위원장에는 장건상이 선임되었다. 창당선언에서 "조선의 현실적 과제인 완전독립과 민주주의국가의 급속한 실현(조선인민당의 목표였음)을 그 당면임무로 하면서 기본이념인 전(全근로대중의 완전한 해방까지 혁명적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한다"라고 천명하고, 강령으로서 "계획경제제도를 확립하여 전민족의 완전해방을 기한다"라고 밝혔다. 이것은 바로 대중정당이 아니라 계급정당의 성격을 띠는 중도좌파의 정치노선을 지향함을 밝힌 것이다. 그 후 신탁통치안을 결정한 모스크바3상회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미·소공동위원회 등에 대하여 조선공산당과 보조를 맞추었다. 그러다가 1946년 5월 좌우합작을 위한 좌우합작위원회가 발족되어 좌익을 대표하여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함으로써 공산당과 민족진영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한편 조선인민당의 일부는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과 함께 3당통합에 합의하여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결성하였다. 이후 여운형은 자파 세력을 다시 규합하여 11월 12일 사회노동당을 조직함으로써 조선인민당은 창당 1년 만에 일부는 남로당으로, 또 다른 일부는 사회노동당으로 흡수되면서 해체되었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정치론 한배호 저 / 이승만과 제 1공화국 서중석 저 역사비평서출판
네이버 백과사전 /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한국근현대사 금성출판사 / 한국현대정당론 심지연 저 창비출판
원본 백범일지 김구 저 서문당출판 /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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