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통해 본 조선시대 생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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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칠거지악(七去之惡)과 삼불거(三不去)

2. 이혼의 증서, 휴서(休書)

3. 소박

Ⅲ. 결론


본문내용
(중략)

《가례(家禮)》에 의하여 남자는 나이 16세 이상, 여자는 나이 14세 이상이라야 혼인을 허락하게 하옵고, 그 부모로서 나이 50이 지나서 진정으로 자녀의 혼인을 원하는 자는 본국(本國)의 미리 사위 되는 예(例)에 의하여, 남녀의 나이 12세 이상이라야 허락하여 관가에 고하고 성혼하게 하오며, 그 혼인을 의논하는 자는 만약 사마씨집의 법에 의하여 서신을 통한 지 두어 달이 못되어서 성혼하게 하오면, 혼수의 준비를 갑자기 판비하기가 어려울 것이오니, 납채(納采) 납채(納采) :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혼인을 구함. 또는 그 의례.
한 뒤에 기년(期年)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그 법령을 범한 자는 경중(京中)에서는 사헌부에서, 외방(外方)에서는 감사와 수령이 고찰하여 율(律)을 상고하여 단죄(斷罪) 단죄(斷罪) : 죄로 단정함.
하며, 그 나이를 속인 자는 이혼시키되, 비록 은사(恩赦) 은사(恩赦) :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죄과가 가벼운 죄인을 풀어 주던 일.
를 지났어도 역시 다 이혼시켜서 적폐(積弊) 적폐(積弊) :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
를 없애어 풍속을 바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조선왕조실록』세종 22년 3월 8일 기록


위의 경우를 보면, 꼭 칠거지악의 경우가 아닌 때에도 이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나라에서 이혼을 시키는 경우는 대부분 양반들의 이혼일 경우였으나, 첫 번째 경우는 나라 자체에서 양민과 천인의 혼인을 금지하여, 이를 몰래 행한 것을 강제로 이혼 시키는 경우였다. 이를 통해, 그 당시 양민과 천인의 혼인이 널리 성행했으며, 나라가 양반의 이혼 이외에도 특별한 경우에는 양민 또는 천인의 이혼까지 간섭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의 경우는 의정부에서 왕에게 남녀성혼의 법도를 아뢰는 것을 인용한 것인데, 인용문에 의하면 그 당시에는 혼인을 함에 있어 나라에서 정한 나이에 맞는 때에 혼인을 하게 하였다. 만약 이를 어기고, 나이를 속여 혼인을 한 자는 이혼을 시키도록한다고 정하였다. 물론, 이 기록이 법으로 정해졌을지는 모르나, 직접적으로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폐를 없애어 풍속을 바르게 하소서.’ 라는 말을 통해, 그 전까지 나이를 속이고 혼인한 적폐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하여 그들을 이혼시키는 일 역시 있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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