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정족산사고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0.01.15 / 2019.12.24
  • 6페이지 / fileicon doc (MS워드 2003이하)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9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 사고
2. 정족산 사고
3. 정족산 사고 내부 소개
4. 기타 참고 자료
5. 참조 자료
본문내용
2. 정족산 사고
(1) 위치
정족산 사고는 조선 후기 외사고(外史庫)의 하나로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의 정족산성 안 전등사 서쪽에 위치한다.
(2) 정족산 사고의 창립 배경
정족사본은 병자호란을 계기로 많은 피해를 입었었다. 그 뒤 효종 4년(1653)에는 불이 나서 약간의 책을 잃었으며, 현종 6년(1665)에 이를 보수하였다. 그래서 숙종 4년(1678)에는 강화도 정족산에 새로 사고를 짓고 마니산 사고본을 이곳으로 옮기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정족산 사고이다.
(3) 정족산 사고의 실록들
<태조실록>에서 <인조실록> 까지는 처음부터 봉안되었고 <효종실록> 은 1661년 11월에 봉안하는 등, 1664년 12월에는 무려 223권에 달하는 실록들을 봉안하였다. 1665년 9월에는 그 동안 빠져있던 부분들을 새로 작성 하여 채워 넣었다. <현종 실록>은 1683년 (숙종9) 3월에 완성 봉안되었으며, <숙종실록>은 1728년 (영조 4) 3월에 완성 봉안되었다. <경종실록>을 1732년 2월에 완성되었으나 노론에 대하여 불리한 기사가 많다는 이유로 1778년 (정조 2) <영조실록>과 함께 <경종수정실록>이 편찬되기 시작하여 1781년 7월에 완성 봉안된 것이다. <성종실록>은1805년 (순조 5) 8월에 <순조 실록>은 1838년 (헌종 4) 윤 4월에 각기 완성 봉안되었다. 그리고 <헌종 실록>은 1865년 (철종 3) 9월에 인쇄하여 각 사고들에 봉안하였으며 <철종실록>은 1865년 (고종 2) 윤 5월에 인쇄하여 봉안하였다.
(4) 근대의 정족산 사고
성내에는 수호사찰인 전등사가 있어 이 사고를 보호하여 왔기에 실록들을 계속 지켜나올 수 있었다. 물론, 이 사고에 봉안하였던 역대실록 및 서적들은 때로는 서울로 가져가기도 하고 일부는 약탈 되는 등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춘추관이 관장하여 관리되었으나, 대한제국시대에는 의정부에서 관원이 파견되어 강화군수와 협력, 관리하여 보관하였다.
참고문헌
http://blog.daum.net/bookxv1005/13307258
http://blog.naver.com/kybin21?Redirect=Log&logNo=120016725114

http://www.edu4u.org/%40culture/17kanghwa/kanghwa_24.php

http://blog.naver.com/roaltlf?Redirect=Log&logNo=53960339

http://blog.naver.com/totosanta?Redirect=Log&logNo=100012899757

http://blog.naver.com/egoismzip?Redirect=Log&logNo=90010109416

http://www.jeondeungsa.org/

http://blog.naver.com/police743?Redirect=Log&logNo=10017487445

http://www.cha.go.kr/

역사스페셜 -56회- 조선왕조실록이 산으로 간 이유는(2000년 방영)

역사스페셜 57회 - 93년만의 귀환, 조선왕조실록(2006년 방영)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문화유산답사]강화도 문화유적 답사 - 고려궁터, 용흥궁, 갑곶돈대, 석모도 보문사, 마니산 첨성단, 전등사, 정수사,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부근리 지석묘
  •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연산군은 교동도에 유배된 지 2년 만에 생을 마감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연산실록을 연산구일기라고 하여 제외시켰던 비운의 임금이다. 강화도는 어느 곳이나 우리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지역이다. 선사시대에서부터 현대까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의 보고다. 이곳을 잘 가꾸고 보존하여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만드는 것은 강화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 [환경과 사회] 천성산 터널공사 지속되어야 하는가
  • 답사하며 실시했던 환경정책평가 연구원의 보고서를 판결의 원문으로 삼고 있습니다.지난 날 고등법원의 김종대 판사님께서 재판과정이 담긴 속기록까지 파기하며 비록 3일간의 짧은 조사 기간과 절차상의 하자는 인정 된다하더라도 환경의 최고 기관인 환경부에서 보내 온 결정이라 번복 할 수 없다고 하며 진정성을 덮고 진행중이던 재판을 돌연 종결 시켜 버렸던 그 판례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성과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겠

  • 강화도 답사기
  • 답사 후기강화버스터미널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신촌 으로 돌아오면서 처음 가졌던 강화도에 대해 토론해 보았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을 지니고 있는 강화도, 마치 방어요새와 같이 설치된 진, 보, 돛대, 그리고 그 안정성에 기인해서 효종 때 설치되었던 사고에 까지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강화도는 한반도의 역사의 중심지이자 격전의 중심지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강화도가 이런 위치를 가지게 되었을까? 단순히 한반도

  • [비정부조직론] 환경개발 국책사업과 시민단체의 갈등사례
  • 답사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조사단이 현장에 가보는 건 단 몇 번에 불과하다. 이유는 짧은 조사 기간이다. 짧은 기간 동안 부실하게 조사된 환경영향평가서는 개발 후 닥쳐올지도 모를 환경 재앙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② 사업 시행을 위한 절차일 뿐, 법적 구속력 없음문제는 평가시기로 현지 환경영향평가서는 사업 결정이 모두 끝난 뒤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실제, 사업 시행을 위한 절차상 협의사항으로 전락할 뿐이다.

  • [한국사,역사,강화도,전등사,인문사회,기행문,보고서,여행기] 한국사의 이해- 강화도
  • . 3. 결미 보물급 유적을 비롯해 국가사적이 많은 강화도 전등사는 과히 불교문화의 전개를 넘어서 한국사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번 답사를 통하여 내 주위에 있는 하나하나가 한국사의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것이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으로만 보고 배우는 것과 직접 실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틀리며 대웅전에서 느낀 그 감정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