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열] 전황후원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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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황후황원삼은 궁중에서 큰 예식이나 혼례식 때 입었던 왕비의 원삼이다. 1897년 대한제국이 되면서 소례복으로 황원삼을, 대례복으로 심청적의(深靑翟衣)로 정하였다. 조선 초기에 명(明)에서 왕비의 단삼(團杉)을 사여 받아 예복으로 착용하였는데, 관리의 단령과 형태가 같은 것이었다. 조선 후기 형태가 원삼으로 변하여 현재도 혼례복으로 착용되고 있다. 조선 영조 25년(1747) ≪국혼정례(國婚定例)≫에는 빈궁 의대 안에 노의(露衣)와 함께 장삼과 원삼이 따로 있었는데, 조선말기에 원삼 한가지로 통일되었다.
조선말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면서 왕비를 황후라 하고, 홍색 원삼도 황후 복색을 쫓아 황색 원삼으로 바뀌었다. 이 황원삼에 '긔미 신조(1919)'라고 기록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영왕(英王) 가례를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영왕의 가례일은 1919년 1월 25일 이었으나 고종이 가례 3일 전에 승하하신 관계로 1922년에 가례를 치르게 되었다.
원삼은 황색 비단으로 백수(白壽)ㆍ백복(百福)ㆍ다남(多男), 세남(歲男), 석류문이 직문되어 있다. 소매와 길의 상단과 하단에도 같은 직문이 직금되어 있다. 소매에는 홍색과 청색비단 끝동이 달려 있고 그 끝에 흰색비단 한삼이 달려 있으며 모두 목단보상화문(木丹寶相華紋) 비단으로 되어있다. 안감은 홍색 호리병 수문단(緞)이며 가장자리에 둘려진 남색 호리병 수문단으로 선을 대었는데, 양끝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접어 바느질하였다. 원삼의 길이는 앞(136㎝)보다 뒤(145㎝)가 길어 끌리며 품은 보통(44㎝)이며 소매너비는 매우 넓다. 여밈은 대금이며 겉깃은 둥글고 안깃은 곧은 깃인데, 흰동정이 달려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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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력,박영규, 웅진씽크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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