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독일의 봉건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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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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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론
2.본론
① 독일 봉건왕국의 형성
② 독일 봉건제의 성립 배경
③ 독일의 장원제
④ 독일 봉건제의 후기 모습
⑤ 독일 봉건제의 특징
3.결론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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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독일은 로마문화나 프랑크 왕국과의 관련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프랑스나 영국과 다른 점이 많았다. 봉건제도의 시기도 프랑스나 영국과 다르게 뒤늦은 12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독일 내에서도 프랑크의 지배 하에 있었던 서부 지역과 그렇지 않았던 동부 지역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등 독일의 봉건제는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독일의 봉건제도는 특징상 다른 국가에 비해 불완전한 봉건제도였다고 한다. 이번 발제에서는 이러한 독일의 봉건제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겠다.
2. 본론
① 독일 봉건왕국의 형성
경건왕 루트비히 Ludwig the Pious. 프랑크의 왕 겸 신성로마제국의 제2대 황제(814~840). 루이1세(Louis Ⅰ), 경건왕 루이(Louis the Pious), 루트비히1세(Ludwig Ⅰ)로도 불린다.
의 사후 카롤루스 대제의 프랑크 왕국은 베르됭(Verdun) 조약에 의해 삼분 되었고 동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와 서프랑크의 카를 2세가 메르센(Mersen) 조약으로 중프랑크에 속하는 로트링겐(Lothringen) 프랑스어로는 로렌(Lorraine). 프랑스 북동부 라인강 서안에 있는 주.
을 둘로 나누어 가졌는데 이 중 동프랑크가 오늘날 독일의 기원이 되었다. 카롤링거 왕조의 혈통이 끊긴 뒤 왕조적 정통성에 따라 왕위가 세습된 서프랑크와 달리 동프랑크는 주요 부족들 바이에른(Bayern), 프랑켄(Franken), 작센(Sachsen), 슈바벤(Schwaben), 로트링겐(Lothringen) 등이 있다.
이 프랑켄 부족의 콘라트(Konrad)를 선거에 의해서 왕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왕권이 미약한 탓에 그의 뒤를 이어 가장 강력한 부족공인 작센공의 하인리히(Heinrich) 1세가 왕위에 추대되었다. 그 뒤 하인리히 1세의 아들 오토(Otto) 1세 오토 대제(Otto the Great)라고도 불린다.
가 왕권을 크게 강화시키고 마자르 족을 격파한 뒤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하여 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the Holy Roman Empire)의 관을 받으며 신성로마제국이 형성되었다. 독일의 봉건제도는 오토 1세의 작센(Saxony) 왕조와 잘리어(Salier) 왕조를 거쳐 형성되어 나가다 12세기 무렵인 호엔쉬타우펜(Hohenstaufen) 왕조의 프리드리히(Fredrich) 1세 때에 본격적으로 확립되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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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錫弘.『西洋史 槪論』. 三英社. 1997
마르크 블로크 지음. 한정숙 옮김. 『봉건사회 Ⅰ,Ⅱ』. 한길사. 2001
브라이언 타이어니/시드니 페인터 공저. 이연규 역. 집문당.『西洋 中世史』. 1986
이민호. 『새 독일사』. 까치글방. 2003
페르디난드 자입트 지음. 차용구 옮김. 『중세의 빛과 그림자』. 까치글방.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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